매일신문

[매일춘추] 13년 만의 외출은 '기적소리'와 함께

곽명숙
곽명숙

2000년 즈음 '우리읍내'와 '동화세탁소', 화가 이인성을 다루는 '노을 앞에서' 등 대구시립극단의 연극 세 편에 의상 제작자로 참여했다. 무한한 상상력을 의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춤 의상에 익숙해 있던 나는, 연극 의상에는 별다른 재미나 매력을 느낄 수 없었고, 이후 극작품에 의상 제작자로 참여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 국채보상운동을 다룬 창작 뮤지컬 '기적소리'와의 인연은 깜깜한 산길에서 헤드라이트마저 꺼져 버린 듯한 삶을 살던 2015년 가을에 시작됐다.

감수만 하리라 마음을 먹고 참가한 프레젠테이션에서 창작극 자체의 신선함과, 실존 인물을 다루는데다 극적인 재미를 간과하지 않은 대본의 치밀함과, 매력적인 연출과, 단번에 이성을 녹여내 버리는 감성의 음악이 나를 사로잡았다.

게다가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연습에서 실연처럼 열정을 쏟아내는 연기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퇴색돼 버린 30년 전 나의 열정을 보았고, 어느새 나는 이 작품을 위한 옷을 만들기로 계약을 하고 말았다.

대본, 연기, 노래, 무용이 나날이 자리 잡고 작품에 군살이 빠지고 근육이 붙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몇 번이나 눈물을 찔끔거렸다.

부모님 또래 의상감독과의 작업이 젊은 배우와 스태프들에게는 좀 버겁지 않을까 하는 기우도 있었지만, 어쨌든 우리는 신선한 긴장감을 갖고 즐겁게 일했고, 나도 내 나이를 잊었던 듯하다.

이러한 노력들이 어우러져 '기적소리'는 1년 동안 모두 14회에 걸친 크고 작은 공연을 성황리에 소화했다. 이렇게 좋은 공연이 끝나다니, 아쉬움이 크다.

대구는 오페라와 뮤지컬의 도시라고 한다. 그만큼 좋은 극장과 무대가 있고 지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공연 작품을 소비해내는 수준 높은 관객이 많이 있다는 말이다. 요즘 외국에서 온 오페라나 뮤지컬 대작이 대구에서 자주 공연된다.

잔잔하면서도 강한 임팩트를 주는 '기적소리' 같은 공연은 그 작품들보다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 또한 스태프로 참여하지 않았다면 '기적소리'를 접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공연의 홍수 속에서 이미 검증된 공연을 챙겨보는 것도 바쁘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 이제는 고전이 된 뮤지컬 '명성황후'의 첫 대구 공연을 보며 통곡했었다. 우리 대구에서도 명성황후와 같이 많은 국민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고 애국심까지 고취시켜주는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이는 많은 이들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 가능하리라.

다음 외출(의상 제작 참여)을 '기적소리'와 함께할지 아니면 또 다른 여행을 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기적소리'와 함께한 외출은 즐겁고 신선한 일탈이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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