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환상의 가족

'정상적인 제도와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다.'

우리가 흔히 북한을 두고 이런 평가를 내리곤 했다. 법과 제도가 있더라도 유명무실하게 운용되면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 북한에게만 해당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한국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한국을 비정상 상황으로 몰고간 주범은 대통령과 가까운 한 일가족이다. 뉴스의 초점이 된 '최순실'이라는 여성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가 어떠한 공직이나 직책을 가졌다는 얘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를 두고 언론'야당에서 '비선실세'(秘線實勢)라고 지칭하니, 어떤 분은 "그런 직책도 있었나?"라고 되물어 주위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최 씨는 고작 대통령과 '영혼의 친구'이고 '언니' '동생'하는 사이에 불과하다고 한다. 대통령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고, 공직 근처에도 가지 않은 평민이 그렇게 막강한 힘을 휘둘렀다고 하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 최 씨가 재벌에게 774억원을 거둬 설립한 미르'K스포츠재단의 배후 인물이자, 딸을 이화여대에 특혜 입학시켰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세간에 회자하는 '권력서열 1위'라는 호칭은 너무나 적절하다.

수업도 듣지 않고 부실한 리포트를 내고도 무난하게 학점을 딴 딸 정유라 씨가 '돈도 능력'이라고 주위 사람을 훈계했다고 한다. '그 엄마에 그 딸'의 전형이다. 최순실 씨의 전 남편인 정윤회 씨는 2014년 청와대를 웃음거리로 만든 '십상시(十常侍) 문건'에 언급된 당사자다. '십상시'는 청와대 인사에 개입한 비선실세를 일컫는 말인데, 그 수장이 정 씨였다는 의혹이 무성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순실 모녀를 보면 이승만 정권 때 이기붕 일가를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최순실 일가와 이기붕 일가는 닮은 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있다. 이기붕은 3'15부정선거로 당선되긴 했지만, 국회의원을 거친 부통령 신분이었고, 최순실 일가는 아무런 직책 없이 대통령 뒤에 숨어 권력을 남용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대통령 일가를 제외하고는 최순실 일가만큼 장막에 숨어서 권력을 누린 사람은 없었다. 한국이 아프리카에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니 과연 정상적인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완벽한 후퇴다. 이 정도라면 국기 문란 수준이 아니라 국기 파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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