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생활 34년의 전직 형사가 '형사와 범죄 이야기'를 담은 책 '수사의 혼'을 출간했다. 대부분을 강력계에서 근무했던 퇴직 형사 김영진 씨가 자신이 담당했던 사건과 수사관의 마음가짐, 범죄의 이면 등을 담았다.
김영진 씨는 1978년 순경으로 임용, 2012년 은퇴했다. 전투경찰 3년을 포함하면 37년 동안 경찰로 살았다. 살인범 7명을 체포했고, 마약사범, 강도범, 성폭력범, 절도범, 소매치기범, 사기범, 방화범 등 수많은 범죄자를 법정으로 보냈다.
자살 직전의 사람을 살리기도 했고, 공갈협박범의 마수에 빠진 여대생을 구출하기도 했다. 범인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가면서도 끝까지 범인을 체포했다. 비록 은퇴했지만 그는 여전히 매서운 눈빛과 강한 악력을 자랑했다.
◆증거 있어도 자백 않는 피의자 많아
범죄증거는 명백하다. 피의자도 범죄를 인정한다. 그렇다고 피의자가 전모를 자백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대부분의 피의자는 실체적 진실을 숨기고, 조금이라도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거짓말을 한다.
묵비권을 행사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피의자가 묵비권을 행사하면 수사는 완전해지지 않는다. 현재 딱 드러난 범죄 외의 여죄를 알 수 없다. 또 훔치거나 빼앗은 돈을 되찾을 수도 없다. '지갑은 훔쳤지만, 지갑 안에 돈은 한 푼도 없더라'는 식으로 딱 잡아떼는 자들도 많다. 결국 범죄의 전모를 파악할 수 없고 피해를 최소화할 길도 없다.
그렇다고 고문할 수도 없다. 범인이 법정에 가서 "고문에 못 이겨 자백했다"고 주장해 무죄가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자칫 피의자와 경찰의 주객이 전도되거나 경찰이 패가망신하는 경우도 있다.
김영진 씨는 "피의자가 묵비권을 행사한다고 경찰관이 범죄를 밝히지 않으면 누가 밝히나? 피해를 당한 사람한테 가서 '범인이 묵비권을 행사해 밝힐 수 없었다'고 말해야 하나? 경찰이 존재하는 이유가 뭐냐? 범죄를 밝히고, 범죄자를 처벌해야 시민들이 경찰을 신뢰할 것 아닌가?"라고 되묻는다.
◆자신만의 제압비법 활용!
김영진 씨는 피의자가 묵비권을 행사한다는 이유로 수사를 대충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명백한 증거가 있을 때, 증거는 없지만 정황상 범인이 확실할 때 자신만의 '제압비법'을 사용한다.
"일단 비법을 사용하면 1분이면 자백합니다. 자백을 바탕으로 증거를 빠짐없이 확보하면 사건은 해결됩니다."
그는 자신만의 '제압비법'을 '고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저질 인간에 대한 형사의 대접이라고 믿는다. 경찰서나 지구대 혹은 어디서든 경찰이 출동했는데도 난동을 부리는 사람에게 그는 어김없이 '제압기술'을 넣는다.
경찰을 보고도 난동을 피우는 사람은 공권력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다른 시민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부러 혼을 내준다는 것이다. 공권력이 무시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선량한 시민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제압비법'을 공개해달라는 요청을 그는 거절했다.
"비법을 사용했는데, 피의자나 변호사의 항의를 듣고 윗선에서 저를 나무라는 경우도 있어요. 고문한 거 아니냐는 거죠. 고문하면 어떤 처분이 따르는지 잘 압니다. 저는 젊었을 때부터 격투기 운동을 많이 했어요. 상처나 후유증이 남지 않도록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어요."
그는 피의자의 범죄 정도와 피의자의 심리상태를 봐가며, 공갈과 협박도 했다고 말한다. 범인이 순순히 말하지 않는다고 넘어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용의자 심리 파악해야 완전한 수사
김영진 씨는 "수사는 젊은 패기나 순발력, 힘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경험에서 오는 촉이 있고, 타고난 형사 감각도 있다. 범인을 잡을 때나, 잡고 난 뒤에도 마찬가지다. 우악스럽게 몰아세우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경찰 중에는 사건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해 때때로 물리적 수사를 하는 바람에 자신은 물론 경찰 조직 전체가 타격을 입기도 한다. 그와 반대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이 달린 중요한 문제임에도 아주 사무적으로 편하게 수사를 진행하는 경찰도 있다. 무리했다가 오히려 징계를 받기 때문이다.
김 형사는 둘 다 옳지 않다고 말한다.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철저하게 수사하려면 증거확보, 치밀한 계획과 명확한 포석을 통한 수사, 수집된 자료를 통해 그림 그리기, 자백 분위기 조성, 범인의 성장환경, 학연'지연'혈연 파악, 사회생활 분석, 사건 자체 분석, 용의자에 대한 이해 등 하나하나 퍼즐을 맞추고 상상력을 동원해야 합니다."
그는 특히 "자백을 받고자 한다면 내가 진실해야 한다. 아무리 나쁜 놈이라도 일말의 진실성은 있기 마련이다. 내가 진실할 때, 상대의 진실한 일면이 노출되기 마련이다"고 말한다.
◆청소년 범죄'사기범죄 주의
요즘은 CCTV가 많이 보급돼 길거리 폭력, 동네 폭력은 많이 줄었다. 일부에서는 CCTV가 인권을 침해한다고 말하지만, 김영진 씨는 '인권을 지키는 눈'이라고 평가한다.
김영진 씨는 대신 "요즘은 10대 청소년 범죄와 사기범죄가 늘었다"고 걱정한다.
그는 사기범죄는 주로 욕심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사기범 중 상당수는 평소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고,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욕심에서 돈을 빌려준다는 것이다. 그는 사기범죄를 심각하게 보아야 하는 이유로 "돈 잃고 신뢰도 무너졌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고 더 끔찍한 범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청소년 범죄는 호기심과 잘못된 우정 때문에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행실이 착한 아이도 호기심이 발동한 친구가 꼬드기면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범죄에 가담한다는 것이다. 청소년 시절 강간, 강도 사건에 휘말리는 바람에 예상하지 못했던 인생길을 걷는 경우가 많은 만큼 가정에서 정기적으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바둑 6단…"수사와 바둑 닮은 데 많아"
김영진 씨는 바둑 6단이다. 형사 시절 대구경찰청의 지존이었다. 바둑에 입문한 것은 고교 1학년 때였다. 1급 두는 친구한테 8점으로 배우기 시작했는데, 두기만 하면 대마가 잡혀 가슴에 불이 났다. 하도 많이 지다 보니, 그 친구를 이기는 것이 가장 큰 목표가 됐다.
그는 마음먹으면 확 질러야 하는 성격이다. 그날부터 두 달 동안 25권의 바둑 서적을 탐독했고, 기원에 살다시피 했다. 그렇게 고수 반열에 올랐다.
그는 수사에 바둑기법을 접목하고, 바둑에 수사기법을 적용한다. 상대의 한 수 한 수, 범인의 한 발짝 한 발짝을 내밀하게 탐색하고 그다음 수를 짐작하는 것이다.
"수사할 때 바둑 전술을 응용합니다. 증거가 없어 막막할 때 바둑 복기하듯 사건의 수순과 참고도를 차분하게 그려 봅니다. 그러면 범인의 길이 보입니다. 경찰은 늘 상상력을 동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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