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때로는 가르침을 들으라

세상의 모든 존재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독립되어 홀로 존재하는 개체는 어디에도 없다. 산문(山門)의 가을은 저물어 지나온 길을 지우며 돌아가고 있다. 뜨거웠던 여름도 가슴 벅차고 은혜로운데, 아직 기억 속에서 지울 수 없는 눈에 선연한 이름들은 벌써 서쪽 하늘의 별이 되었다. 바람은 어디로 가는지 나뭇잎은 한 잎 두 잎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는다.

승시장터로 팔공산이 들썩거렸고 곧이어 야단법석 간화선 대법회가 마무리되었다. 다시 산은 깊은 고요 속으로 들어갔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인연이 되고 세상을 배우는 면역성이 높아지는 것일까? 출가 사문은 여럿이 함께하여 승가(Samgha)라 하고 또한 둘 이상이 길을 같이 가야 하므로 도반이 있어야 일체중생과 더불어 구족되어 사부대중이 된다. 이 세상은 시끌벅적 아수라의 세계이다. 나무와 나무가 숲을 이루면 총림(叢林)이 된다. 총림은 종합 수행 도량이다. 참선하는 선원과 경전을 배우는 강원이 있고 계율을 익히는 율원이 있다. 서산대사 휴정 스님은 "선은 부처님의 마음, 교는 부처님의 말씀, 율은 부처님의 행동이다"라고 했다. 승이 가벼우면 법이 가볍고 법이 무거우면 승이 무겁다는 것이다.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는 일이 어찌 작은 일인가. 편함과 한가함을 위해서도 아니고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는 것도 아니며, 명예와 재물을 구해서는 더욱 아니다.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부처님의 지혜를 이으며, 중생을 건지려는 것이다." 발심 수행자의 출가 나이가 많아지고 수행 환경이 예전 같지 않음은 부끄러운 일이다.

'때로는 가르침을 들으라.'

간화선 대법회를 열었다. 선문의 대종사 일곱 분이 노구를 마다하지 않고 사자후를 하셨다. 일상이 무료하게 생각 없이 제자리걸음하고 관념화되면 무기력해져서 그날이 그날이 된다. 때로는 눈뜬 사람들, 지혜로운 스승들의 가르침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자기 삶을 거듭 충전하고 새롭게 다질 수 있어야 한다.

초기 경전에 보면 부처님은 '눈뜬 사람, 잘 참는 사람, 널리 보시는 분, 잘 견딘 분, 지혜의 눈이 열린 분'이라고 표현하였다. 이번 간화선 대종사들은 법랍이 50, 60년 넘은 노고추이다. 평생 좌복 위에서 참선과 화두로 견뎌 낸 종장들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우리들은 모두 관계 속에서 은혜를 입고 또 그것을 이루어 나누면서 살아갈 것이다.

이 시대에는 누구를 존경하거나 겸손을 지닌 미덕들은 거의 사라지고 무슨 일을 하든지 만족과 감사를 모르게 되었다.

"어진 사람과 가깝게 지내고, 분수에 알맞은 곳에 살며 부모를 섬기고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고 보살피는 것, 남에게 베풀고, 이치에 맞게 행동하며, 악을 싫어해 멀리하고, 존경할 만한 사람을 존경하라."

이처럼 으뜸가는 행복은 관계 속에서 거듭나고 주고받는다. 마치 이슬비 속에서 서서히 옷이 젖어 가듯이 좋은 것은 좋은 것대로 나쁜 친구는 나쁜 대로 관계를 형성한다. 오늘 복잡한 일에 부딪혀도 동요되거나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확실한 사람은 잘 견디는 사람이다. 무엇이든 갑자기 이루어지진 않는다.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서 오늘이 된 것이다. 한 잔의 차가 한 조각의 마음이듯 무량락(無量樂)은 한순간이다. 우리 불교에서 지혜만을 우선시하고 자비를 소흘히 하는 것은 한 조각의 마음에 지혜와 자비심이 있음을 간과한 탓이다.

올해 가을 '때로는 가르침을 들으라' 말씀은 짧았다. 내용은 쉬웠다. 잘 조는 사람이 정진을 잘 하는 사람이다.

우리 곁에 부처가 있다.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존재 불타 석가모니는 육신의 나이 여든 생을 마치면서 제자들에게 유언하였다.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고 진리에 의지하라, 자기 자신을 등불 삼고 진리를 등불 삼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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