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법 제31계 미인계. 미녀를 첩자로 보내서 상대를 향락에 빠뜨린 뒤, 그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승리를 얻는 전략이다. 빤한 책략이기는 해도, 교묘히 운영하기만 하면 전장에서 직접적으로 얻지 못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이른바 '폭탄이 육탄만 못하고, 총이 베갯머리를 당하지 못한다'는 것.
바야흐로 춘추시대, 월나라와 오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구천과 부차가 각각의 군주였는데 결과는 월나라의 참패였다. 구천 부부는 포로가 되었고, 부차는 그들을 가둬놓은 채 온갖 잡일을 시키면서 모욕을 주었다. 구천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는 견뎠다. 오히려 자신을 낮추어 부차를 받들어 모심으로써 신임을 얻어내, 결국엔 제 나라로 돌아가기까지 했다. 그러고서야 복수의 의지를 불태웠으니, 거기서 나온 고사가 바로 와신상담(臥薪嘗膽)이다. 하지만 복수라는 것이 의지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어서, 오나라의 강한 군사력에 구천은 괴로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조언이 들어왔다. "깊은 물에서 노는 물고기도 향기로운 미끼에 걸려 죽듯이, 부차가 좋아하는 것으로 그의 의지를 꺾어야만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습니다."
포로 생활 동안 적의 취향을 파악해둔 구천은 부차에게 해마다 수많은 미녀를 바치기 시작했다. 그때 보내진 미녀 중 하나가 그 유명한 '서시'다.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까다로운 이태백이 시로 다 읊을 정도였지만, 성정이 악독하기 그지없어 독사 구덩이에 궁녀들을 던져 넣고는 깔깔깔 웃으며 즐겼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아무튼 부차는 넘어갔다. 구천이 자신에게 완전히 복종했다고 믿고는 정사도 돌보지 않은 채 주색잡기에만 골몰한 것이다. 그러니 결론이 어찌 났겠는가. 구천에게 목숨을 내어놓을 수밖에. 미인계가 제대로 먹힌 경우라 하겠다.
실제로 미(美)는 판단력에 장애를 일으키곤 한다. 아름다움이 곧 선(善)이라는 맹목적인 신앙을 부추긴다는 것이 그것이다. 경험상 우리는 범죄자가 아름다우면 그 죄를 가벼이 여기는 경향이 있다. '아름다움이란 표피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들리지 않는다.
살면서 아름다움의 힘이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 경우를 숱하게 겪었다. 못생기고 비뚤어진 마음만큼 추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 만큼 알게 된 것이다. 그러면 나는 아름다움을 극복한 것일까? 천만에. 이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아름다운 이에게 흔들리니 부차와 다를 것이 없는 것을. 그러니 아름다움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반복이라 하겠다. 아름다움을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해야 하고, 아름다움을 경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복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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