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25일 최순실 문제를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고 했지만 들끓는 민심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 국민들을 회의론자로 만든 건 바로 대통령이다. 불신만 더 키웠다. 스스로 최순실과 관련해서 지금까지 한 말들을 모두 빈말로 만들어 버렸다.
의혹 제기와 비판에 강한 부인과 반박으로 일관하던 모습이 부메랑이 돼 대통령과 청와대 곳곳에 상처를 남기고 있다. "일고의 가치도 없고 있을 수도 없다"고 한 일이 대명천지에 버젓이 일어나고 있었으니 말이다. 비록 비선이라고는 하지만, 조직적으로 벌어진 일이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터이다. 대통령과 문고리 권력이 개입 내지 방조하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이원종 대통령비서실장이 국정감사장에서 "입에 올리기도 싫은 성립이 안 되는 얘기다.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가 어떻게 밖으로 회자되는지 개탄스럽다"던 모습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어쩌나. 이 비서실장의 말대로라면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청와대는 정상적인 사람들이라고는 없는 봉건시대 이전을 살고 있다는 말이 된다. 국정 농단, 국기 문란 행위라는 말도 대통령이 한 말이다. 그게 사실로 드러났으니. 사과 말고는 달리 더 할 게 없었다. 그 사과를 국민들이 받아주고 믿어줄 건지는 확신할 수 없다.
야당의 반응이야 당연하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야당 시절, 대통령이 그 선두에 있던 시절 보여준 모습에 비하면 오히려 얌전하고 점잖다. SNS에서처럼 탄핵과 하야 이야기가 들불처럼 번져 나오지 않는 게 대견하다. 왜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으랴. 당한 걸 생각하면 그러고도 남을 텐데. 그들의 잣대로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유인 선거 중립의무 준수 위반 사안과 비교하자면 이번 최순실 이야기가 결코 가볍지 않은데 말이다. '탄핵의 추억'이 가져다준 야권의 성숙인가?
안쓰러운 건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다. 아무리 씻고 닦고 찾아봐도 측량할 수 없는 국민들의 분노와 실망에 사과 말고는 입을 열 수가 없다. 더 딱하게 된 건 친박계다. 대통령이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역성을 들던 친박계다. 평소 대통령과 한몸이라고 생각했는데 몸통은 엉뚱한 데 있었다는 게 드러났으니 섭섭할 만도 하다. 그래도 겉으로 뭐랄 수도 없다. 그들이 먼저 새누리당을 난파선으로 생각지나 않을는지.
전후 사정이야 어찌 됐든 개헌은 판도라의 상자에서 빠져나왔다. 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1987년 체제가 생명을 다해 2017년 체제가 필요하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국민들 귀에는 '순실 개헌'으로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의 의도가 무엇이든 개헌을 판도라 상자에 도로 집어넣는 일은 이제 어렵게 됐다. 대통령 스스로 개헌을 꺼냈고 여야를 넘어 국회 내 개헌파도 다수이기 때문이다. 개헌론은 사실상 24일부로 생명을 부여받았다.
물론 사정이 돌변했다. 대통령은 시정연설을 통해 최순실 정국의 물꼬를 돌리고 블랙홀이라 했던 개헌 정국을 주도하려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놈의 최순실' 때문에 계획이 다 헝클어져 버렸다. 중립성과 의도만 의심받는 지경이다. 사실이라면 대통령이 고집을 버려야 한다. 자칫 개헌 정국을 호헌 정국으로 만들어 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길은 하나다. 달리 선택이 없다. 대통령은 개헌에서 손을 떼야 한다. 개헌으로 가는 장을 열어준 것으로 대통령의 역할은 충분하다. 공정한 심판으로 남아야 한다. 대신 대통령은 위기에 처한 경제와 외교'안보에 올인해야 한다. 그 사전 단계로 대통령의 말이 없으면 꼼짝도 안 하는 '공중전화' 같은 각료들은 다 잘라내야 한다. 그 수가 적지 않다. 저들과 함께하다가는 될 일도 안될 판이란 게 시중 여론이다. 또 최순실 게이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청와대 비서진도 다 교체해야 한다. 이 정도는 돼야 국민들이 대통령 말에 눈길이라도 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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