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홍길과 함께하는 한국 명산 16좌] <14>충남 천안·아산 광덕산

날쌘 단풍이 지나치기 전에,주말엔 가을 산행 떠나보세요

광덕산 정상에서 엄홍길 대장과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엄홍길과 함께하는 한국 명산 16좌' 행사에 참가한 등산객들이 엄 대장과 함께 광덕산을 오르고 있다.
광덕산 정상에서 엄홍길 대장과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옛날 날랜 보부상의 하루 걸음은 약 50리. 단풍의 남하 속도도 이와 비슷하다고 한다. 10월 중순 설악산을 오색으로 물들인 단풍은 이제 백두대간, 소백준령을 따라 남행을 거듭하고 있다. 입추, 한로, 상강(霜降)을 거쳐 오는 가을이 석 달쯤 되니 단풍의 시효도 그쯤 될 것 같지만 단풍은 아주 잠깐 우리 곁에 머물 뿐이고 지역도 제한적이다.

그래서 자연은 다가서는 자의 몫, 떠나는 자의 권리이다. 지금 주왕산 절골엔 오색의 향연이 펼쳐지고 경주 무장산엔 억새의 은빛 군무가 일렁이고 있다. 이번 주말엔 장롱에 모셔둔 재킷을 꺼내고 스틱의 먼지도 닦으며 외출 준비에 나서보자.

밀레 주최 '엄홍길과 함께하는 한국 명산 16좌' 이달엔 중부의 명산 천안'아산 광덕산을 찾았다.

◆전국에서 1천200여 명 참가자 집결='한국 명산 16좌' 14번째 행사가 열리는 21일 강당골엔 전국에서 1천200여 명의 참가자들이 모여 성황을 이루었다. 원정대의 산행코스는 철마봉을 거쳐 정상에 오른 후 장군바위를 거쳐 강당골로 하산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화사한 주황색 셔츠를 입고 단상에 오른 엄홍길 대장은 "물수건을 짜면서 여름 산을 오른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상강을 맞았다"며 "충청의 명산 광덕산에서 맘껏 가을 추억을 만들고 가시라"며 산객들을 격려했다.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했다는 김경민(53'대구시 상인동) 씨도 "모처럼 멀리 중부권 명산에 도전하게 되어 기쁘다"며 "단풍이 내려가는 속도를 따라 남부 내장산까지 가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주 내내 수은주가 높았던 탓에 아직 만산홍엽(滿山紅葉)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산허리부터 제법 울긋불긋 색의 향연이 펼쳐져 산꾼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광덕보시' 불교 덕목 갖춘 광덕사=조선시대 한양에서 경상도와 전라도로 내려갈 때 세 방향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이 바로 천안 삼거리다. 이 교통 요충지를 굽어보며 동서로 길게 늘어선 산이 광덕산이다.

산세가 연꽃처럼 펼쳐지고 산줄기가 꽃잎처럼 포개져 불도의 기운이 강한 산으로 알려져 있다. '광덕산'이라는 이름은 세조실록에 처음 등장하는데 '자비를 널리 알려 중생에게 베푼다'는 광덕보시(廣德布施)라는 뜻을 담고 있다.

산자락에 자리 잡은 광덕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선승 진산(珍山)에 의해 창건되었다. 도당 유학생이었던 자장율사가 귀국 때 가져온 진신사리를 봉안했다고 한다. 불교에 귀의했던 세조가 '이 절엔 일체의 부역을 면제하라'고 할 정도로 특별히 아꼈다.

대웅전 앞에는 수령 400년이 넘는 호두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고려 후기 유청신(柳淸臣)이 원나라에서 묘목을 들여와 심은 것이라고 한다. 이 나무가 번성해 지금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를 탄생시키게 되었다.

◆정상 오르면 계룡산'예당저수지 조망=송악면 주차장을 출발한 참가자들은 곧바로 강당골로 올라섰다. 이곳은 영조 때 학자 외암 이간(李柬)이 관선재를 짓고 후진들을 가르쳤던 곳이다. 길 옆엔 오색으로 물든 생강나무, 졸참나무, 당단풍이 제법 가을 풍경을 연출했다.

철마봉을 거쳐 2시간쯤 오르니 정상이 나타났다. 광덕산 높이는 699m, 700 고지에 1m가 모자란다.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들은 1m급 정상석을 세워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그래도 낮은 키를 높여 충청지역의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예당저수지가 시야에 들어오고 남쪽으로 계룡산도 조망된다고 한다.

광덕사에서 안산 쪽으로 오르다 보면 조선의 기생이었던 '부용의 묘'가 나온다. 김부용(金芙蓉)은 본래 반가 출신이었으나 가세가 기울자 60세 연상의 함경관찰사 김이양(金履陽)의 소실이 되었다. 시재(詩才)와 가무가 출중했으며 미모가 뛰어나 뭇 사내들의 가슴을 태웠다. 60년을 뛰어넘는 이들의 플라토닉 러브는 김이양이 92세로 세상을 떠나는 1845년까지 이어졌다.

이들의 사랑을 기려 후대 풍류가들은 황진이, 매창(梅窓'부안의 명기)과 함께 부용을 조선의 3대 명기로 추앙했다.

◆이번 주말엔 단풍'억새산으로 떠나세요=넓은 공터가 펼쳐진 정상은 점심시간을 맞아 대연회장 분위기가 연출됐다. 늘 그러듯 엄 대장의 인기는 정상에서 더 빛난다. 이곳저곳에 불려다니며 음식을 나누고 대작(對酌)을 하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다. 정상석 인증 땐 포토 행렬이 30분씩 이어지기도 한다.

정상에서 황홀한 오찬을 즐긴 산객들은 이제 하산길에 나선다. 능선엔 벌써 노란 낙엽이 카펫을 이루었다.

흔히 가을 산행을 '3색3미'(三色三美)라고 한다. 화려한 파스텔톤 색감의 단풍이 있는가 하면 차분한 회색톤의 억새밭도 있다. 곰배령, 점봉산, 금대봉 야생화 트레킹 같은 테마코스도 있다. 여기에 전어, 왕새우, 꽃게 같은 가을 '3미'(三味)가 더해지면 가을 산행은 더 즐겁고 풍요로워진다. '3미'(三美)든 '3미'(三味)든 이번 주말엔 꼭 길을 떠나도록 하자. 발 빠른 가을이, 날쌘 단풍이 우리 곁을 지나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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