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동, 세계유산 도시 꿈꾼다] <4>서원, 세계유산 등재 추진

"中·日과 차별성 갖춘 한국 서원, 2019년엔 세계유산 등재"

안동의 도산서원(사진)과 병산서원이
안동의 도산서원(사진)과 병산서원이 '한국의 서원'에 포함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있다. 한국의 서원은 500여 년간 인재양성 교육기관으로서뿐 아니라, 향사례 등 유학적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적 전통문화 브랜드다. 안동시 제공
세계유산위원회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지난해 9월 등재 잠정목록에 포함된 한국의 서원 실사단 심사를 진행했다.
세계유산위원회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지난해 9월 등재 잠정목록에 포함된 한국의 서원 실사단 심사를 진행했다.

#서원 9곳 등재 대상

안동 도산·병산서원 포함…보존·관리 가장 잘 된 유산

#예비심사 때 '반려'

문화재청 등재 신청 철회…내용 보완 후 재추진 계획

#500년 전통 문화유산

인재들의 학문 토론 공간…지성적 네트워크 거점으로

#사림들 교류의 장소

서원이 지도자 양성 기구…성리학 지식 갖춘 士林 키워

◆추진→잠정 등재→반려 판정→신청 철회→재추진

2012년 4월 18일,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 추진위원회'가 발족했다. 안동의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을 포함해 대구 달성 도동서원, 영주 소수서원, 경주 옥산서원, 논산 돈암서원, 정읍 무성서원, 장성 필암서원, 함양 남계서원 등 '한국의 서원' 9곳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이 자리에는 국가브랜드위원회, 문화재청, 등재 대상 9개 서원이 소재한 지방자치단체, 한국서원연합회, 관련 민간 전문가 등이 참가해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함께 힘을 모으기로 했다. 문화재청은 이들 서원들은 '사적'으로 지정 보호되는 곳인 데다 현존하는 637개 서원 중에서도 보존·관리가 가장 잘 되고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도 빼어난 곳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서원'은 2011년 12월 9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이후 등재를 위한 다양한 학술회의와 지자체별 지속 가능한 관리 방안, 서원 간 연계 가능성 등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노력들이 있었다. 지난해 9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세계유산위원회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실사단 심사가 진행됐다.

하지만 ICOMOS는 그해 12월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충족하는 잠재적 가치를 갖추었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국내외 유사 유산과의 비교분석'과 '연속유산의 선택방법' 그리고, '완전성 맥락 속 유산경계의 선택' 등에서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반려' 의견을 내놨다. 중국·일본 서원과의 차별성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급기야 문화재청은 올 4월 '한국의 서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철회하기로 했다. 문화재청은 "예비심사 격인 ICOMOS 평가에서 '반려'(Defer) 판정을 받았다"며 "철회 후 등재기준에 부합하는 내용을 보완해 다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등재가 불가능한 '반려' 판정을 받은 '한국의 서원'에 대한 세계유산 심사가 '등재 불가'를 받아 사실상 무산될 위기에서 신청 철회 후 보완을 통한 재신청으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지난 8월 (재)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은 제1회 이사회를 열고 한국의 서원에 대한 세계유산 등재 재추진 의지를 밝혔다. 재추진을 위해 ICOMOS와의 자문계약 제도를 이용해 등재신청서 작성방향을 국제적 시각에 맞춘 탁월한 보편적 가치 도출에 나서기로 했다.

관리단 이사회는 "14개 지자체와 문화재청, (재)한국의서원통합보존관리단과 협력해 ICOMOS가 지적한 사항을 충실히 보완해 2019년에는 반드시 세계유산에 등재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준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손상락 안동시 세계유산담당은 "앞으로 서원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현재 갖고 있는 인프라 정비 및 주변 환경정리 ▷장기적인 관점에서 외부 전문가에 의해 정해진 콘셉트를 수용하기 위한 교육·체험·숙박·기념품 및 특산품 코너 등 인프라 확충 ▷관광·체험 등에 대한 구체적인 프로그램 개발 및 콘텐츠 발굴 ▷이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홍보·마케팅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지성적 네트워크 중심, 한국의 문화 브랜드 가치로 손색없어

'한국의 서원'이 가진 세계유산적 가치에 대해 서울대학교 김광억 명예교수는 "서원은 건축문화재보다 그 설립 과정, 공간적 구조, 상징 역할과 기능의 여러 면에서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정신문화의 생산과 전수 기제로서 이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명예교수는 "서구의 전통적인 교육기관은 교회(사원)로부터 시작했지만 한국의 서원은 유교문화의 공간이다"며 "유교는 신의 섭리가 아닌 인간의 이성, 혹은 본성으로부터 도덕을 찾는 이른바 자기 수양을 통한 도통의 학문체계이자 방법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서원이 높은 수준의 도학을 실천한 인물을 받들고 그의 가르침을 심화하는 선비들로 구성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며 "서원은 지식 전수의 교육기제를 넘어서 인간됨을 핵심으로 하는 실천교육의 기제"라 평가했다.

이상해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는 "사립 교육기관인 조선시대 서원은 유교사상과 학술활동, 예의 실천, 신앙, 살아있는 전통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있었다"며 "한국의 서원은 지금까지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선현을 배향하고 제사를 지내는 제향 공간, 유생들이 경서를 강독하는 강학 공간, 유식(遊息)을 하는 공간을 근간으로 해서 구성됐으며 동아시아의 성리학 정신과 활동을 보여주는 탁월한 가치를 가진 유산"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서원들은 지역별·학맥별로 각각 다양한 교육·문화적 특성을 지닌 한국 지성문화의 중심으로 500여 년을 지속해 온 전통 문화유산이다. 특히 서원은 제향 인물의 사상·철학·정신·학문, 그리고 가치관을 중시하는 정신문화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유형의 건축물·경관, 서원에서 생활했던 사람과 그들의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다.

서원은 역사와 교육·제향의례·건축·기록·경관 등 다양한 유·무형 문화유산들의 집합체다. 도서출판과 예술·정치 등 복합적인 문화가 보존된 현장이다. 지역을 거점으로 한 지역 지식인들의 네트워크 중심이었다.

한마디로 서원은, 우수 인재들이 '강론'(講論)하고 학문을 토론했던 공간이었다. 제향 인물의 상징성, 서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지식인들 간의 지연과 학연, 여론 형성 등은 서원이 지성적 네트워크의 거점이 되기에 충분했다.

이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지성문화'라는 무형의 복합적 가치를 지닌 서원문화는 현대사회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충분한 가치와 경쟁력 있는 '한국의 문화 브랜드'로 손색없는 가치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사림들의 회합과 여론 형성'교육'출판 중심지 역할

서원의 건립 주체이자 운영의 핵심인 '사림'(士林)은 지역에서 향약(鄕約)과 사창(社倉) 운영 등을 통해 지역 사회를 자율적으로 운영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사림들은 향촌사회에서의 정치'사회적 활동의 거점으로 서원을 활용했다.

한국의 서원은 1543년(중종 38) 순흥에 소수서원(백운동서원)이 처음 건립된 이래 17세기에 이르면서 전국에서 경쟁적으로 건립되고, 발전했다. 서원은 단순히 교육기관으로 기능하지 않고, 사림이 향촌사회에서 정치'사회적 활동을 벌이는 중심으로 변화했다.

서원은 향촌 사회의 지도자 양성처로 기능하였다. 향촌사회 교화와 향촌사회를 이끌어갈 주체로서 성리학 지식을 갖춘 사림(士林)의 양성 기구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기구로 주목받은 것이 바로 서원이었다.

서원은 정치적 현안에 대해 당대 최고의 지역 지성인 선비들이 여론을 형성했던 곳이다. 정치적 현안과 관련해 향촌 사림들의 견해를 조율하고 수렴하며, 나아가 자기들이 지지하는 정당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이러한 여론은 연명 상소, 학문 토론, 그리고 의병 격문(檄文) 등으로 나타났다.

17세기 이후 서원이 유교 교육의 성격보다 학맥의 중심이자 여론 수렴의 장소가 되면서, 서원은 사림이 회합하고 교류하는 장소로 주목됐다. 이 때문에 서원 건축은 제향 공간인 사당과 교육 공간인 강당'숙소를 기본으로 하고, '유식'(遊息) 공간 등 기타 부속 시설을 둔다. 이 중에서 유식 공간은 문학을 통한 교류의 장으로 사용했다.

안동 병산서원의 만대루, 함양 남계서원의 풍영루, 장성 필암서원의 확연루, 경주 옥산서원의 무변루 등의 '문루'(門樓)와 영주 소수서원의 경렴정 같은 정자가 사림의 회합 장소로 활용된 곳이다.

이 밖에 서원은 지역별, 학맥별로 가치와 이념을 추구하는 교육의 본산이었다. 따라서 서원에는 강학의 도구로서 각종 교과용 도서나 사전류, 각 시기의 대표적 출판물들이 소장돼 있었고, 제향 인물이나 그의 학맥과 관련된 인물들의 문집'자료들이 보존됐다. 이처럼 서원은 다양한 서적들이 보존된 지역 도서관이었다. 또, 직접 책을 인쇄하던 출판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프랑스의 저명한 문화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 auss, 1908~2009)는 "유럽에는 도서관을 갖춘 아카데미가 도시에만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조선시대 때부터 고을마다 대학 형태의 교육기관이 존재했다"며 서원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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