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둘, 그 신비로움

의상 작업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현재 열리고 있는 '2인무 페스티벌'(대구 남구 대명동 꿈꾸는씨어터)은 내게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한때 장래 희망이 사진작가였다. 당시 내 앵글의 피사체는 '둘'이라는 세계에 쏠렸다. 모자, 부자, 동자승과 노스님, 부부 등 짝이 지어진 모습의 대비된 표정과 동작을 관찰하면서, 둘의 다양한 삶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무용 의상을 디자인하는 일을 하는 지금도 나는 유독 한자 '사람 인(人)'이 좋다. 서로 기대지 않으면 서지 못하는 작대기 같은 우리 인간.

그래서 지금도 듀엣이 출연하는 작품의 의상에 더욱 관심이 간다. 마침 두 사람만 등장하는 2인무 페스티벌은 이런 내게 무척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30분쯤 일찍 도착한 공연장 입구에서 낯선 인파의 웅성거림을 봤다. 그 인파 속에서 낯익은 무용사진 작가와 만났다. 그는 "왜 오늘 오셨느냐"며 "'대구무용사진 촬영회'가 오늘 공연 중 진행되기 때문에 오늘 공연은 관객들이 공연에 집중하기 힘들 텐데"라고 하지 않는가. 아뿔싸! '그런 행사는 본 공연이 아닌 리허설 때 하지'라고 생각하며 속으로는 살짝 짜증을 냈다.

그런데 공연이 시작되자 사진기 셔터 소리는 소고 설장구 소리에 묻혀 전혀 귀에 들리지 않았고, 촬영 때문에 혹시 산만해지지는 않을까 우려됐던 무용수들은 오히려 공연에 더 몰입하는 듯했다.

그런데 결국 직업은 어쩔 수 없어서 '저 옷이 최선이었을까?' '내가 만들었다면 어떻게 춤선을 좀 더 표현할 수 있었을까?' '아니 자연스러운 일상복 같은 의상이 더 낫지 않았을까?' 등의 생각을 하는 동안 공연은 끝이 났다.

공연을 보는 동안 나는 사진기 셔터 소리를 잊을 수 있는 몰입의 희열을 맛봤다. 이 몰입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나는 두 사람이 '몸의 언어'로 주고받는, 모이고 또 흩어지는 동작과 들숨과 날숨의 하모니에 압도된 것이었다.

둘, 이는 불편한 부조화의 세계를 보여주다가도 어느 순간 완벽한 일치를 펼치는 불가사의의 세계는 아닐까? 그래서 오히려 편하고 조화로우며 넉넉한 영토는 아닐까? 어쩌면 갈등을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힘이 있는 세계인지도 모르겠다.그래서 공연이 끝났을 때, 힘찬 박수를 보낸 것은 단지 공연에 대한 만족을 표현한 것만은 아니었다. 부부, 친구, 자매, 형제 등 너와 나의 아름다움에 대한 내 마음속 표현이었으리라. 둘이라는 세계가 주는 넉넉함에 대한 화답이었으리라.

오늘 내가 얻고 가는 둘의 세계에 대한 화두는, 자아와 타자의 세계를 넘어 내 속에 있는 그 둘의 세계, 기쁨과 슬픔, 아름다움과 추함 등에 대한 무겁지만 가벼운 것들이다. 그러니 이 가을은 더 넉넉하고 충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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