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
오규원의 '비가 와도 젖는 자는'
강가에서/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그 후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다시 한 번 멈추었었다 //……스스로 그 이름이 되어 강을 떠난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오규원, '비가 와도 젖는 자는' 부분)
비가 온다. 이렇게 비가 올 때면 난 항상 추억의 본질에 대해 생각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행복했던 일도 많았을 터인데 그런 일들은 거의 기억에 없다. 오히려 가슴 아팠던 기억들만이 내 영혼을 채우고 있다. 아마도 슬픔이라는 기억 장치가 지닌 교묘한 지속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슬픔은 기쁨보다 우위에 있는 기억 장치이다. 산다는 것은 때로 까닭 모르는 슬픔을 부여안고 떠나가는 열차와 같다. 내가 희망하는 것은 언제나 연착했고 하나뿐인 차표를 환불할 수도 없었다. 결국 삶은 나에게 슬픔을 기억으로 저장했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이제는 그 슬픈 기억이 전혀 슬픔이지 않다. 슬픔이었음에는 분명한데 슬픔이 아니다. 지금 밖에는 비가 오고 텔레비전 가득히 바다가 흐르고 있다. 진정 슬프고 가슴 아픔은 오히려 그런 기억조차 지워진 그것이 아닐까.
이 시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아꼈다. '강가에서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다는 표현이 좋았다. '그 후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 다시 한 번 멈추었'다는 표현에 또 좋았다. 그대와 내가 어찌 내리는 비를 멈출 수 있겠는가? 당연히 그대와 내가 멈추어야 하지 않겠는가? 멈추어 선 그 자리는 필연적으로 풍경을 만들었다. 그대와 내가 멈추어 선 '거기'는 그리움으로 자리 잡는다. 그리움은, 나를 젖게 하고는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이다. 다시 멈추어 선 풍경을 그릴 수는 있을까? '비가 온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 그것이 슬프다. 바람에 비가 묻어 있다. 그리움이란 그런 것이다. 아주 오랜 뒤에 낡은 밥상에 오른 마른 물고기와 같은 그런 것이다. 지느러미는 꺾이고 그 빛나는 눈도 비늘도 다 시들어버린 그런 것이다. 그렇게 누워 말이 없는 그런 것이다. 언제나 비는 마음보다 몸이 먼저 체감한다. 언제나 그랬다. 힘겹게 파닥거리는 마른 강의 물고기처럼 젖기 위해 수없이 네 몸에 손을 뻗었다. 그것이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젖기 위한 몸부림이란 걸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았다. 하지만 이제 몸으로 안다. 젖기 위해 수없이 손을 뻗는 건 마른 샘의 고기가 서로에게 거품을 내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그대와 내가 젖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비가 내려야 함을. 바로 지금 바람에 비가 묻어 있다.
강가로 나갔다. 비를 멈출 수 없어 그대와 나는 추녀 밑에 잠시 머물렀다. 나를 젖게 하고도 강은 젖지 않는다. 나를 젖게 하고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 비가 와도 젖은 자는 결코 다시 젖지 않는다. 지나간 시간들이 아득하다. 바야흐로 가을빛이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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