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與, 거국중립내각 급선회 배경은?

 靑 컨트롤타워 부재 속 '선제 대응론' 공감대

권력분점으로 "개헌 불씨 살리자" 이중포석 해석도

새누리당이 30일 야권의 대선 주자군들이 제기하고 당내 비박계 인사들이 가세했던 거국중립내각 구성 요구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은 '최순실 국정개입 파문'을 그만큼 심각하게 인식한 결과로 풀이된다.

 지난 26일 긴급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를 열었을 때만 해도 청와대·내각의 대폭 인적 쇄신과 최순실 씨에 대한 즉각적이고도 철저한 수사를 요구했을 뿐 구체적인 내각 운용방향에 대해서만은 대통령 권한의 고유 영역으로 남겼으나 예상을 뛰어넘는 특단의 대책이 없고서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권에서는 거국내각 구성이 역대 정부에서도 위기 때마다 제기되기는 했지만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측면에서 대안으로서 책임총리제가 우세하게 거론됐던 게사실이다.

 그러나 주말 광화문에서 열린 '대통령 퇴진' 집회에 주최측 추산으로 수만명이 몰린 것을 목격하면서 자칫 수습 시기를 놓칠 경우 2008년 쇠고기 파동이나 이에 앞서 2004년 탄핵 역풍과도 같은 상황으로 번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급속히 퍼지기 시작했다.

 실제 지난주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지지도가 10%대로 주저앉으면서 '식물 정권'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는 공포가 당내에엄습한 상태였다.

 특히 이 경우 여권 전체가 공멸하면서 내년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잇따라 터져 나왔다.

 일요일에 긴급 최고위를 소집해 박 대통령에게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전격 요구한 것은 이 같은 정치적 분위기에서 나왔다.

 거국중립내각은 개념적으로는 야당 또는 야당이 추천하는 인사까지도 내각에 참여하도록 함으로써,내각이 청와대와 여당의 정파적 색채에 한정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로 아직 헌정사에서 실질적으로 거국중립내각이 구현된 적은 한번도 없다.사실상 '연립정부'형태에 준하는 정부 운영의 한 방법으로 볼 수 있다.

 그 정치적 함의는 대통령이 국내 정치에 사실상 손을 떼고 거국중립내각에게 내치(內治)를 일임하고,대통령은 국가 원수로서 외교 안보 등에 주력하는 분권형 국정운영이라고 할 수 있다.

 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기왕에 내각을 개편해야 하는 마당에 일반적 수준으로는 국민이 납득할 수 없다"면서 "당이 주도권을 쥐고 정공법으로 나가는 것밖에는 난국을 타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김성원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새누리당은 선도적,적극적으로 이번 사태를 수습해 나갈 것"이라며 "책임총리 가지고 뭐가 될 수 있겠느냐.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여당도 집권당의 프리이엄을 포기한다'는 점을 제도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거국중립내각이라는 것이다.

 국정의 컨트롤타워라고 할 청와대에서는 대통령 비서실장과 주요 수석참모진이 사퇴한 만큼 여권에서 수습책을 마련해 낼 수 있는 곳은 사실상 새누리당만 남았다는 점도 급선회의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최고위에서는 책임총리가 총리의 기능과 권한 강화에 대한 문제라면 거국중립내각은 내각의 구성과 성격의 변화를 수반하는 만큼 훨씬 강한 요구라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거국중립내각의 총리 후보군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지만 주요 조건으로 '여야의 동의'를 내세운 만큼 박 대통령이 당의 건의를 수용한다면 결국 야권 출신 인사가 나오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당이 주도적으로 상황 반전에 나서지 않고 한발씩 물러서다가는 결국 벼랑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의 발로가 여권으로서는 권력을 야권에 내주는 '극약 처방'에 가까운 거국내각 구성이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검찰에 대해 이날 오전 귀국한 최 씨를 즉각 수사하라고 촉구한 것 역시 같은 인식에서 출발했다.

 당내 일각에서는 최 씨를 둘러싼 혐의가 아직 분명하지 않아 영장을 청구할 경우 기각될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지만 악화한 국민 여론을 되돌리는 데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거국중립내각 제안은 박 대통령이 제안한 임기 내 개헌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이중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거국중립내각 구성은 박 대통령의 권한 분산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어 최근 국회에서 개헌의 방향으로 주요하게 제기되는 '이원집정부제'의 형태가 먼저 구현되는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핵심 당직자는 "거국내각이라는 것은 국정 안정을 꾀하기 위한 것인 만큼 권력 분산을 통해 위기가 수습된다면 개헌에 대한 긍정적 여론도 확산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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