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대통령의 짧은 소매

한(漢) 고조 유방은 출신이 미천했다. 그와 함께 반란을 일으키고 숱한 전투를 치르며 나라를 세운 사람들도 대부분 출신이 미천했다. 번쾌는 개 도살자였고, 관영은 행상이었고, 주발은 장례식의 전문 나팔수였다. 하후영은 마부였고, 노관은 직업도 없는 무뢰배였다. 선비 축에 낄만한 사람은 드물었다.

측근들은 유방과 더불어 140여 회의 크고 작은 전투를 치렀으며, 죽음의 문턱에서도 배신하지 않을 '신의'로 뭉친 '의형제'였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그들에게는 나라를 이끌 역량이 없었다. 나라를 다스리자면 관료를 대거 기용해야 했지만, 한 고조 유방은 기질적으로 선비(관료)를 불편하게 여겼고, 싫어했다.

이때 숙손통이라는 인물이 유방 앞에 나타났다. 그는 선비를 싫어하는 유방의 눈에 들기 위해 일부러 허름한 복장으로 나타나 유세했다. 그는 유방에게 '나라를 얻기는 어렵지만, 지키기는 더 어렵다'며 국가의 기틀을 강조했다. 노련한 관료였던 숙손통은 복잡하고 어려운 예법을 싫어하는 유방을 고려하되, 나라의 격에 맞는 예법을 만들었다.

유방은 숙손통이 마련한 예법과 제도를 보고 '이제야 황제의 자리가 귀한 줄 알겠다'며 숙손통의 예법과 정책은 물론이고 100여 명의 선비(전문 관료)들을 받아들였다. 함께 전장을 누볐던 '의형제'들은 2선으로 물러나게 했다. 덕분에 개국 초기 불안한 정국은 안정됐고, 나라의 기초는 튼튼해졌다.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한비자는 '소매가 길어야 춤을 잘 추고, 밑천이 많아야 장사를 잘할 수 있다'고 했다. 유방은 내키지 않았지만 무대에 어울리는 '소매 긴 옷'을 입었기에 '멋진 춤'을 출 수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소매 긴 옷'과 '막대한 인적 밑천'을 확보했음에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다. 편하다는 이유로 별 책임도 권한도 없던 시절 입었던 '소매 짧은 옷'을 고집했고, 믿을만하다는 이유로 몇 푼 안 되는 인적 밑천만 굴렸다.

'작은 무대'에서나 볼만했던 그 춤이 '큰 무대'에서도 우아할 리 없고, 구멍가게에나 어울릴 밑천이 국가 사업의 격에 맞을 리 없다. 숙손통과 같은 인물이 박 대통령에게 없었다는 점은 대통령 개인에게는 불행이고, 나라에는 불운이다.

대통령이 실패하기를 바라는 국민은 없다. 대한민국을 적대시하는 세력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는 선거 당시 지지 여부와 상관없다. 대통령의 성공은 대한민국의 성공이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술집에서, 세미나장에서 노(老)신사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들의 박 대통령에 대한 분노는 역대 다른 대통령들에 대한 분노와 성격이 다르다. 절망의 빛이 돈다고 할까.

지금의 노신사들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험난한 길을 헤쳐 온 세대다. 이른바 '박정희 세대'는 가난과 폐허, 절망의 땅에 오늘의 대한민국을 건설한 주인공들이다. 그들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피로한 몸을 쉬이 눕히지 않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지도, 입고 싶은 것을 입지도 않았다. 그렇게 오늘의 대한민국을 건설했다.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끌었던 대한민국과 그 시대에 경의를 표하는 행위'라고 믿었다. 그들의 한 표는 단순히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한 표가 아니었다.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사람도 있고, 2선 후퇴를 바라는 사람들도 많다. 사면초가의 박 대통령에게 국정을 이끌 동력이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 시대가 이대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런 상황은 국익과 현재 정국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운 세대와 그들의 시대에 씻기 힘든 상처를 주는 행위다.

나는 '목숨을 걸겠다'는 말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자들을 경멸하지만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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