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배낭 메고 세계 속으로] 백두산

백두산 천지에서 내려오는 길에 만날 수 있는 천지폭포(장백폭포). 영험한 천지 물이 하나의 가닥이 되어 한반도에 정기를 뿌려준다는 생각에 왠지 숙연해진다.
백두산 천지에서 내려오는 길에 만날 수 있는 천지폭포(장백폭포). 영험한 천지 물이 하나의 가닥이 되어 한반도에 정기를 뿌려준다는 생각에 왠지 숙연해진다.

여행 갈 때마다 혼자 선전포고하듯 불쑥 한마디 남기고 떠나버리는 필자를 보는 가족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요즘 둘째 아들까지 깊은 태클을 걸어온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가족들과 오붓하게 다녀오기로 하고 노선을 민족의 정기가 듬뿍 서린 백두산으로 잡았다.

◆장엄한 백두산 천지와 천지폭포

백두산은 백색의 부석이 마치 흰머리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2,750m)으로 중국에서는 장백산이라 부른다. 천지를 둘러싼 16개의 봉우리는 대부분 깎아 세운 듯한 절벽으로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예로부터 한민족에 의해 신성시되어 왔으며, 중국 사람들도 백두산 천지와 중국 서쪽에 위치한 천산산맥에 있는 천지 두 곳을 성스러운 산으로 숭배하여, 지금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으며 소원을 비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백두산 정상에 올라섰을 때 무거운 안개로 뒤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변덕스러운 날씨로 인해 우리가 흔히 사진으로 접하는 백두산 천지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은 하고 왔지만 멀리 이국땅에 와서 이번 여행 중에 가장 큰 볼거리를 놓친다는 생각에 그저 하늘만 원망했다.

1시간 정도 지났지만 도통 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백두산은 신비스러운 천지의 모습을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자꾸 머리에 스친다. 특히 부정한 자가 올라오면 천지의 모습을 아예 감추어 버린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릴 적 아버지 지갑에서 약간의 돈을 훔쳐 하루 종일 영화도 보고 돈을 물 쓰듯(?) 하고 혼날까 봐 두려워 밤늦게 겨우 집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종아리에 병장 계급장을 여러 개 달고서야 용서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 후 살면서 별로 부정한 일을 저지른 기억은 없다. 그런데도 괜스레 가슴 졸인다.

갑자기 "와~" 하는 사람들의 함성에 놀라 고개를 드니 장엄한 천지의 모습이 서서히 펼쳐진다. 신이 큰 빗자루로 구름을 한쪽으로 밀어낸 것일까. 맑은 하늘 아래 펼쳐진 천지의 모습은 장엄하다 못해 경외스럽기까지 하다.

몇 년 전 중국 서쪽 우루무치에 있는 천산산맥의 천지도 가보았다. 천산의 천지는 천산산맥의 만년설에 둘러싸여 포근한 어머니 같은 여성스러운 풍경이었다. 반면 백두산 천지는 광활한 황야에 우뚝 혼자 서서 비바람을 호령하는 강렬한 남성적인 인상이다.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척박한 땅이지만, 절대 함부로 할 수 없는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천지폭포(장백폭포)의 웅장함에 다시 한 번 놀란다. 폭포서 흘러 내려오는 물은 시리도록 차지만 영험한 천지 물이 하나의 가닥이 되어 한반도에 정기를 뿌려준다는 생각에 왠지 숙연해진다. 내려오는 중간에 간헐천에서 솟아나는 뜨거운 물에 익은 삶은 달걀은 출출함을 달래주는 최고의 군것질이다. 연길서 유명하다는 진달래 식당에 가서, 엄청나게 많은 양의 냉면을 말끔히 비우고 숙소로 향했다.

◆北'中'러 맞닿은 삼합과 시인 윤동주의 모교

다음 날 삼합이란 곳에 들렀다. 이곳은 중국, 러시아, 북한 영토가 서로 맞닿아 있는 트라이앵글 지역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동해 바다가 보인다.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두만강 끝을 사이로 두고 러시아와 북한이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중국은 바로 코앞의 바다를 보고도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다. 만약 일부라도 중국 영토였다면 동해를 통한 태평양 진출에 중요한 교두보가 되었을 것이다. 도문대교에 올라보니 다리 한가운데 줄을 그어 국경을 표시하고 있다. 한 발자국만 넘으면 바로 북한이다. 도문강서 대나무로 엮은 뗏목을 타고 강 건너 바로 북한 땅을 스치듯 지나간다. 강 건너 북한 땅에는 아무렇게나 자란 무성한 잡초 외에는 반겨주는 이가 아무도 없다. 단동에서는 배를 타고 신의주 쪽으로 바짝 붙어 가면 북한 동포들 얼굴이라도 볼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도문강을 뒤로 하고 허기를 달래려 한적한 길가의 식당에 들어갔다. 현지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식당으로, 그림 없는 메뉴판을 보며 중국어를 전혀 못하는 내가 한국말을 모르는 식당주인에게 주문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불안과 짜증으로 겹쳐 있었다.

여행 중 이런 상황을 가끔씩 겪지만 이럴 때는 나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다. 주위를 빙 돌아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이 먹고 있는 음식들 중 괜찮아 보이는 몇 가지 요리를 주문하는 것이다. 이럴 땐 손님의 양해를 구한 뒤 음식 맛을 살짝 보기도 하지만, 여기선 그냥 눈짐작만 믿은 채 주문했다. 그중 달걀을 삶아서 반으로 잘라 놓은 음식을 2접시나 시켰는데, 다른 음식은 그런대로 먹을 만했지만 그 음식은 도저히 먹지를 못해 모두 남겼다. 중국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는 이 음식의 정체는 오리알인데, 삶아서 소금에 재 놓았다가 먹는다고 한다. 그래서 도저히 짜서 입에 넣지를 못했던 것이다. 아내가 왜 못 먹을 음식을 2개씩이나 시켜서 남기느냐며 잔소리를 한다. 난들 진작 알았다면 왜 시켰겠는가. 특히 아내를 더욱 짜증스럽게 한 것은 식당의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칸막이가 없는 화장실 안의 암모니아 냄새는 화생방훈련을 방불케 했고, 라이터를 켜면 금방 불이 붙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럴 땐 조용히 있는 게 상책이다.

중국은 근래 들어와 소수민족들을 달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소수민족 자치구에서는 중국어와 현지어를 같이 배우고 사용하게 하는 것이다. 간판들을 표기할 때 중국 글씨를 위쪽에, 소수 민족어는 바로 밑에 중국 글씨보다 작게 표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족 자치구인 연길만큼은 유일하게 그 반대로 표기를 한다면서 자부심이 대단하다.

다음 날, 윤동주의 모교로 유명한 용정에 있는 대성중학교를 찾았다. 대성중학교는 현재 용정제일중학교로 명칭이 바뀌었다. 1921년에 개교한 이 학교는 수많은 애국지사를 배출하기도 했지만, 그중 김일성도 있어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낀다. 문익환 목사와 정일권 국무총리의 모교이기도 하다. 신관과 구관이 나뉘어 있는데 신관에서는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으며 구관에는 윤동주 시인의 자료와 항일 독립운동의 각종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구관 앞에는 윤동주의 대표 시인 '서시'가 비석에 새겨져 있다. 학창 시절에 시험에 자주 나왔던 낯익은 서시를 혼자 조용히 읊어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