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함창마을서 숨바꼭질…상주 함창역·읍사무소 등 2.3km 곳곳에 숨은 작품

함창보건소와 함창교회 사이 골목길을 새로 단장한
함창보건소와 함창교회 사이 골목길을 새로 단장한 '우리 동네 박물관'. 마을 주민들의 손길이 가득하다.

단풍색이 짙어 간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짙어 아름다운 만큼 낙엽의 숙명도 가까워져 온다. 절정에 오른 단풍을 문경, 상주 인근에서 담을 예정이라면 '함창마을 미술관'에 들러보자. 가을걷이를 갓 마친 들녘을 배경 삼은 미술관이 있다. 문경새재와 25㎞ 남짓거리인 상주 함창이다.

함창은 마을을 통째로 야외미술관으로 만들려 했다. 함창역을 중심으로 읍사무소 인근을 갤러리로 삼았다. 2014년부터 주민들이 예술가들과 함께 마을을 바꾸기 시작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2014 마을미술프로젝트 공모'에 당선되면서다.

2년 가까이 그리고, 모으고, 꿰매고, 쓸고, 닦고, 칠했다. 옆집 예빈이도, 영웅이도 같이 했다. 바깥에다 대고 "와서 한 번 보라"고 할 정도가 된 건 올해 초였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손님들이 제법 많이들 다녀갔다. 방명록을 보니 제주, 호남 외에는 전국에서 다 온 것 같았다.

마을 미술관이다 보니 발품을 팔아야 한다. 작품을 보려면 숨바꼭질하듯 일일이 찾아다녀야 한다. '함창판 골목투어'라 불리는 이유였다.

술래가 찾기 어려워했던 곳은 '우리 동네 박물관'이었다. 50m가 될까 말까 한 함창보건소와 함창교회 사이의 골목길. 딱 두 사람이 지나다니면 알맞을 폭이었다. 이걸 '박물관' 혹은 '미술관'이라 불러도 괜찮을 것으로 만들어뒀다.

손바닥 크기의 타일에 꽃병, 소, 개구리, 불상, 심지어는 자신의 모습인 듯한 사람을 그렸다. 인근 함창초교와 함창중, 상지여중 학생들이 그린 것이다. 학생들이 그린 타일의 호위를 받은 1827년의 상주읍성 지도, 1750년대 함창현의 모습을 담은 지도 등이 액자의 중심에 있었다. 마을 정체성을 알리는 것들이었다.

함창의 오랜 역사와 현재의 이야기를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곳으로 열어가는 작품이라고 했다. 지도는 함창의 과거였고, 학생들이 그린 타일 그림은 함창의 현재와 미래였다.

10년간 비어 있던 양조장 터도 미술관으로 바뀌었다. 새 이름은 '세창주유소'. 자동차 연료인 가솔린 공급처가 아니라 주유소(酒遊所'술과 함께 노는 곳)다. 1956년부터 2004년까지 막걸리 공장으로 돌아가던, 하지만 10년간 빈집이었던 함창 유일의 양조장이었다.

몇 가지 작품과 시설로 나뉘어 있다. '술, 시간을 깨우다'라는 공간이 세창주유소의 중심이다. 사실 세창주유소는 들어서면서부터 모든 게 설치미술처럼 보인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 아무렇게나 널린 의자며, 누군가 대충 버려놓은 페트병일지라도.

실제 작가가 작품으로 개입한 것은 하얗고 빨간 실이다. 명주와 술을 상징하는 하얀 실을 천장에서 늘어뜨렸다. 실 사이로 술 만들던 기계가 작품 역할을 하고 있다. 뜻하지 않게 자연의 힘도 더했다. 하얀 실을 보조 그물로 삼은 거미들이 이 주변에 가득하다. 거미도 작품의 일부처럼 보인다.

함창고 맞은편 증촌리도 소소하게 볼만한 곳이다. 도로명 주소로 가야 2길. 이곳은 고령가야 태조왕릉이 있어 '왕의 이웃'으로 불린다. 이곳도 마을 미술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문패가 있어야 할 자리에 철판이 하나씩 붙어 있는 게 이채로웠다. '선인장 꽃피는 집'은 선인장이 있는 집이었고, '파란 지붕'은 지붕이 파란색이었다. '쌀 짓는 집'은 이상배 씨네 정미소였다. 사슴 모양만 있는 집도 있었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사슴을 키우는 집이었다. 철판도 작품의 일부였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거다.

마을 미술관 전체를 감상하기 위해 걸어야 하는 거리는 총 2.3㎞. 설렁설렁 걸어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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