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정윤회 문건 유출'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던 박관천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은 이런 발언을 했다. "우리나라의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 최순실 씨가 1위, 정윤회 씨가 2위이며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당시 언론들은 '황당한 권력 서열 강의'라 일축했다. 이듬해 6월,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마카오 해외 원정 도박을 주선한 혐의로 범서방파 폭력 조직을 구속 기소했다. 두 달 뒤 이들이 운영했던 불법 도박장에 네이처리퍼블릭 정운호 전 대표가 드나들었단 사실이 밝혀졌다. 정 전 대표의 도박 규모는 100억원대에 달했다. 그는 수임료 50억원을 들여 자신을 구할 유능한 변호사를 찾았다.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가 낙점됐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징역형이 나오자 착수금을 돌려달라며 실랑이하다 변호사가 폭행당해 정 전 대표를 고소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수사하다 정 전 대표가 검사장 출신인 홍만표 변호사를 통해 구명 로비를 벌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016년 7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정식 수임계를 내지 않고 정 전 대표를 변론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홍만표 변호사와 우 전 수석이 같은 변호사 사무실을 쓰던 '절친'인 것도 함께 드러났지만 우 수석은 반발했다. 그러나 같은 날, 조선일보는 우 전 수석의 아내가 부동산을 넥슨이 시세보다 높은 1천300여억원에 매입했다고 보도했다. 이 과정에 우 전 수석의 서울대 법대 후배였던 당시 현직 검사장 진경준이 개입했다는 의혹이었다. 당시 이석수 청와대 특별감찰관은 우 전 수석 내사에 착수했다. 조선일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미르재단 자금 모금에 관련됐다고 보도했다. 청와대는 곧장 반발했다. 이 감찰관의 행위는 '국기 문란'이며 조선일보는 '부패 기득권 세력'이라 비난했다. 여기에 MBC가 이 감찰관이 언론에 감찰 내용을 유출했다고 후속 보도했다. 김진태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 겸 편집인이 2011년 대우조선해양에게 호화 유럽 출장과 골프 접대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송 편집인은 사퇴하고 조선일보는 일련의 관련 보도를 중단했다.
2016년 9월, 한겨레신문이 K스포츠재단 이사장에 최순실의 단골 마사지센터 사장이 임명되었다는 사실을 최초 보도했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의 시작이다. 다음 달인 10월,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이화여대 입학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일로 최경희 이대 총장이 전격 사임했다. 이어 최순실이 대통령 연설문을 고쳤다는 의혹까지 제기됐지만 청와대는 부인했다.
2016년 10월, JTBC가 최순실의 태블릿 PC를 단독 입수해 이 의혹이 사실인 것으로 밝혀냈다. 최순실은 대통령 연설문 수정뿐 아니라 대통령 일정 같은 국가 기밀까지 관장하고 있었다. 경위를 알아보겠다던 청와대는 이 보도가 나가고 20여 시간 만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통해 관련 내용을 시인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는 없었다. 대통령 '하야'나 '탄핵', '퇴진' 같은 단어가 연일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에 오르고, 전국의 대학가와 시민사회단체에서 시국선언이 쏟아지고, 대통령 하야와 직접 수사를 촉구하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연이어 열리고 있다.
당연한 결과로 대통령 지지율은 속수무책 무너지고 있는데 가장 최근 여론조사를 찾아보니 9.2%였다. 임기 내내 30% 이하로는 절대 떨어지지 않던 수치였다. 대통령 하야에는 67.3%가 찬성한다고도 적혀 있었다. 흥미로운 건 박근혜-새누리당의 고정 지지층이 모인 대구경북 지역의 지지율이 이보다 낮은 8.8%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콘크리트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 균열이 무참한 시절에 분노한 우리들을 어르고 달래 새 시대를 만드는 분수령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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