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미르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말 중 하나가 바로 '미르'일 것이다. 이 말은 '용'(龍)의 순우리말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최세진이 쓴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 '龍'자를 '미르 룡'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용은 상상의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문명의 발상지 모두에서 나타나며 민간 신앙에서도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특이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용은 중국 문명, 불교, 민간 신앙이 혼재되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먼저 임금의 얼굴을 '용안', 임금이 앉는 의자를 '용상'이라고 하는 것처럼 왕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불교에서는 천룡팔부(天龍八部)의 하나로 불법의 수호자로 여겨지고, 문무왕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나라의 수호자로 의미가 확장되기도 한다.

민간 신앙에서는 주로 물과 관련된 신이나 용왕으로 불리고 있다. 초등학교 때 소풍 날 꼭 비가 오는 이유에 대해 학교 지을 때 못을 메웠는데 그 못의 용이 노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비가 오지 않아 기우제를 지낼 때에는 다섯 방향의 용왕의 그림을 그려 놓고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민간에서 용을 그릴 때 다섯 가지 색으로 그렸는데, 민간 신앙에서 용은 다섯이라는 숫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삼국유사에서는 수로부인을 납치하는 악당의 모습이기도 하고, 활을 잘 쏘는 거타지에게 도움을 받는 약한 존재로 나오기도 한다. 안개로 조화를 부려 왕의 앞길을 막기도 하는데(처용랑 망해사), 어쨌든 이 경우들 모두 물과 관련이 된다.

'미르'라는 말이 '용'과 함께 쓰일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에서 용이라는 말이 들어오기 전에 우리 민족에게 이미 그러한 개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자가 들어 온 후에도 백성들 사이에서는 계속 썼던 말로 추정이 된다. 우리 민족이 생각하는 용이 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미'가 물을 뜻하는 옛말이었기 때문에 용을 왜 '미르'라고 불렀는지에 대한 약간의 단서를 얻을 수도 있다.

'미르'의 또 다른 어원으로는 '미륵'(彌勒)을 들 수 있다. '彌勒'은 재림 예수처럼 백성들을 구제할 미래불을 뜻하는 범어 마이트리야(Maitreya)를 중국말로 음차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한자음으로는 '미륵'이지만 원래 중국 발음이 '미르'였다는 것이나, 미륵불이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한다는 것을 보면 '미르'가 '미륵'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사를 살펴보면 신라 말의 궁예가 미륵을 자처한 것은 유명한 일이고, 고려 말 우왕 때에도 경도의 여승과 무적이라는 종이 미륵을 자처하며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켰었다. 이 외에도 세상이 어지럽고, 백성들이 어디 하나 마음 둘 곳이 없을 때는 꼭 미륵을 자처하는 사기꾼들이 나타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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