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동네 으뜸 의사] 최헌욱 안동 동산정형외과의원 원장

"환자에게 더 가까이 가려고 흰 가운 입지 않죠"

최헌욱 원장 1956년 대구 출생. 대구중, 대륜고, 계명대 의과대 졸업. 계명대 동산의료원 정형외과 전문의. 안동성소병원 정형외과 과장. 스위스 뮐러정형외과병원 인공관절 연수. 안동 동산정형외과의원 원장. 전 안동교도소 의무과장. 전 안동시의사회장. 안동시 지역보건의료심의위원. 대구지검 안동지청 의료자문부위원장. 근로복지공단 수시 자문의사. 국민건강보험공단 안동지사 자문위원. 국세청장
최헌욱 원장 1956년 대구 출생. 대구중, 대륜고, 계명대 의과대 졸업. 계명대 동산의료원 정형외과 전문의. 안동성소병원 정형외과 과장. 스위스 뮐러정형외과병원 인공관절 연수. 안동 동산정형외과의원 원장. 전 안동교도소 의무과장. 전 안동시의사회장. 안동시 지역보건의료심의위원. 대구지검 안동지청 의료자문부위원장. 근로복지공단 수시 자문의사. 국민건강보험공단 안동지사 자문위원. 국세청장'경찰청장 표창 등 수상 다수.

최헌욱(60) 안동 동산정형외과의원 원장은 말끝마다 '허허' 하며 푸근한 웃음을 지었다. 논리정연하게 표현하기보단 꾸밈없이 이야기하고, 자신의 얘기를 하기보단 남의 말을 듣는 데 집중했다.

그는 "대구에서 안동을 오가는 고속도로에서 브레이크 페달을 거의 잡지 않는다"고 했다. 거침없이 속도를 낸다는 의미가 아니다. 앞차, 그 앞차까지 내다보고 차간 거리를 넉넉하게 유지하며 여유 있게 달린다는 뜻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감정적인 충돌을 싫어하고 앞서나가며 스스로 내세우기도 꺼린다. "아내는 제 성격이 느긋하고 우유부단하대요. 하지만 저는 제 할 일을 하다 보면 큰 결과가 돼 돌아온다고 생각해요." 그는 요즘 즐겨 듣는 노래로 한동근의 '이 소설의 끝을 다시 써보려 해'와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를 꼽았다.

◆묵은 정이 좋아 둥지 튼 안동

대구가 고향인 최 원장이 안동에 터를 잡은 건 벌써 26년이 넘었다. 계명대 동산병원에서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1990년 안동성소병원 정형외과 과장으로 안동에 둥지를 틀었다. "인턴 시절에 포항, 경주, 문경, 안동 등 4곳에서 파견 근무를 했는데요. 그때부터 묵은 정이 있는 안동이 참 좋더라고요. 순박하고, 점잖고. 환자들도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기보다는 의사 말을 잘 들어주고요. 3년간 봉직의로 근무를 하면서 안동이 '제2의 고향'이다 싶었어요."

그가 맺었던 인연이 개원 후에도 이어졌다. 계명대 동산병원에서 전공의로 근무하던 시절,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크게 다친 환자가 실려왔다. 그는 환자의 속옷을 자르며 "나중에 새로 한 벌 사주겠다"고 농을 던졌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환자는 걸어서 퇴원했다. "10년 후 한 남성이 다친 아들을 데리고 개원한 제 병원에 왔는데요. 자신도 예전에 다리를 크게 다친 적이 있다며 보여주는 데 자세히 보니 제가 수술했던 바로 그 환자였어요."

의사의 길은 꽤 돌아서 안착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있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할머니의 찢어진 점퍼를 감쪽같이 기웠고, 6학년 때는 잠옷 바지를 직접 만들어 입기도 했다. 손으로 뭔가를 하는 직업이 좋아 서울의 모 대학 건축공학계열에 입학했지만 적성에는 맞지 않았고, 군 생활을 마친 뒤 계명대 의과대에 재입학했다.

그는 "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교사나 교수를 했을 것"이라고 했다. "남들하고 이야기하는 걸 재밌어해요. 수석 합격으로 들어간 대구중학교 시절에는 공부가 하기 싫어 지금은 고인이 된 장효조 선수와 함께 야구를 했지만 눈이 나빠서 그만뒀고, 음악 쪽도 좋아하지만 소질이 많은 것 같진 않아요. 하하." 정형외과를 선택한 데는 느긋한 그의 성격이 한몫했다. "정형외과는 수술 규모는 크지만 외과나 내과처럼 당장 사람의 목숨이 좌우되진 않아요. 낭만이 있는 과라고 할까. 돈에 연연하지 않아도 열심히만 하면 먹고살 수 있고,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가 없어 여유가 있고. 저한테는 잘 맞았죠."

◆가운을 벗고 환자와 더욱 가깝게

최 원장은 10여 년 전부터 하얀 의사 가운을 입지 않는다. "의사 가운이 비위생적이에요. 개인 의원에서 매일 가운을 빨 수 없으니까 오염되기 쉽죠. 움직이기도 불편하고요. 또 가운을 입으면 환자들과 거리감을 두는 느낌이 들어요. 권위적이잖아요. 의사 가운을 입지 않으니 환자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는 느낌이 들어 좋아요."

그는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최대한 편안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했다. 자신의 병을 편안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하게 설명하고, 환자의 상황에 맞게 주의할 점들을 일러준다는 것. "농사짓는 노인환자에게 무조건 움직이지 말라고 하면 납득을 못해요. 대신 일을 하더라도 쪼그려 앉는다거나 높은 곳에 오르내리는 일은 적게 하라고 권하죠. 될 수 있으면 농담을 섞어서 설명하는 게 환자가 오랫동안 기억하는 것 같아요."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는 또 있다. 지난 2000년 1월 임차해 있던 병원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면서 급하게 병원을 지어 이전한 때였다. 추운 겨울날, 병원 문 앞에서 화물차가 주차돼 있던 다른 차량을 들이받는 사고가 났다. 그는 서둘러 응급실의 불을 켜고, X-선 촬영 준비까지 마친 뒤 다친 화물차 운전자를 도왔다. 1시간 가까이 땀을 흘려가며 운전자를 차에서 꺼낸 순간, 환자는 택시를 타고 다른 병원으로 가버렸다. "맥이 탁 풀리고 씁쓸한데 한마디도 못했어요. 허허."

최 원장은 중'고교시절 악대부를 하며 익힌 색소폰 실력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양로원이나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하고 장애인 아동 돕기 연주도 한다. 안동 MD앙상블에서 테너로 장애인 공동체를 다니며 무대에 오른다. 안동중'안동고와 협약을 맺고 지역 운동선수들을 지원하고, 장애인복지시설 거주인들에게 치료 지원도 하고 있다. 최 원장은 지난 5월 정형외과 전문의를 사위로 봤다. "사위랑 이곳에서 함께 일하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안동은 떠나지 않을 겁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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