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환자 절반 이상 스스로 입원
병동 안에서 자유롭게 오갈 수 있어
중요한 결정 내릴 땐 의료진과 논의
환자 투약 여부는 철저하게 지켜져
질환 중증도에 따라 소규모 모임
전문의 6명 밖에 없는 현실 아쉬워
지난 2일 오전 대구 달성군 화원읍 대구정신병원. 보호병동에 입원한 50대 여성 환자가 미소 띤 얼굴로 실습 나온 예비 간호사들의 손을 꼭 쥐었다. "우리 손 잡아요." 그가 매일 간호실습생들을 만날 때마다 반복하는 행동이다. 손을 맞잡은 간호대 학생은 "보호병동에 오기 전에는 걱정도 되고 무서웠지만 웃는 얼굴로 반겨주는 모습에 두려움이 싹 가셨다"면서 "환자들이 워낙 살갑게 챙겨줘 분위기 적응에 큰 도움이 된다"고 웃었다.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부리는 환자와 강제로 구속복을 입힌 뒤 병실에 가두는 의료진. '정신병원 보호병동'을 상상할 때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다. 그러나 직접 찾아간 정신병원 보호병동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환자들은 병동 안을 자유롭게 오가며 질서 있게 공동생활을 했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의료진과 함께 논의했다.
환자들을 돌보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입원 환자들은 '어린아이'처럼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의료진은 '엄마'처럼 환자들의 '제2의 사회화' 과정을 돕는다"고 했다.
◆쇠창살 없고, 일반 병동과 비슷해
보호병동에 대한 오해는 병동에 들어서는 순간 사라졌다. 출입구는 상상했던 쇠창살이나 철문이 아닌 평범한 여닫이 문이었다. 문에는 강화유리로 된 작은 창문이 달렸고, 출입구 옆에는 화재 위험이 있거나 환자가 다칠 수 있는 날카로운 물건, 유리, 화학제품, 긴 끈 등의 반입을 제한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잠긴 문을 열고 보호병동 내부로 들어섰다. 조용한 실내는 일반 병동과 별 차이가 없었다. 젊은 남성 환자는 탁자에서 간호실습생과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고, 몇몇 환자들은 TV 뉴스를 보고 있었다. "제가 하고 싶어요. 할 수 있어요." 한 여성 환자가 간호사와 옥신각신하며 직접 쓰레기통을 비웠다.
"나 잡으러 왔어요?" 또 다른 여성 환자가 불안해하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윤정숙 간호과장이 웃으며 "구경하러 왔어요"라고 대답하자, 단박에 표정이 환해지더니 사탕 하나를 손에 쥐여준다. 윤 과장은 "환자들이 미술 치료 시간에 만든 작품을 선물받은 적도 많다"고 했다.
대구정신병원은 8~12인실로 구성된 5개 병동으로 이뤄져 있다. 한 병동마다 보통 60~70명의 환자가 함께 생활한다. 병실 안은 단출했다. 조금 낮은 병상과 개인별 사물함이 전부였다. 다만 창문은 머리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좁았다. 환자들이 창문 밖으로 탈출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다. 창문과 거울은 깨지지 않는 강화유리로 돼 있고, 벽도 자해를 막기 위해 완충재를 덧대 푹신하게 해뒀다. 환자가 홀로 방치되지 않도록 샤워실 등 일부 공간은 이용 시간을 제한한다.
◆철저한 약물치료와 다양한 재활 프로그램 진행
대구정신병원 입원 환자는 절반 이상이 스스로 병원을 찾은 '자의 입원'이다. 환자가 입원 치료를 거부해 가족 등 보호자 2명의 동의를 얻어 입원하는 '타의 입원'도 있지만, '인신보호 구제청구'나 '퇴원 처우개선 심사청구' 등 환자의 권리 구제를 위한 제도가 마련돼 있어 환자가 원할 경우 퇴원이 가능하다. 의료진은 환자가 입원할 때 절차, 방법 등을 알려준다.
환자들은 대부분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한 상태다. 일손을 돕는 간호실습생들과도 잘 어울리는 편이다. 이곳 환자들은 대부분 조현병을 앓고 있다. 윤 과장은 "요즘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젊은 환자들이 늘고 있는 편"이라며 "몸이 아플 때도 24시간 내내 아프진 않듯이 정신질환도 스트레스 등 외부 요인이 가해지면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보호병동에서 가장 철저하게 확인하는 것은 환자들의 투약 여부다. 정신질환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정확한 약물 처방과 규칙적인 복용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질환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는 환자일수록 약물 복용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윤 과장은 "약물 순응도가 좋은 경우 2주 정도만 제대로 투약해도 굉장히 호전된다"면서 "다만 정신질환은 완치가 어렵고 지속적인 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상태가 호전되더라도 꾸준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약물치료로 증상이 완화되면 의료진 면담이나 재활 프로그램을 통해 회복 속도를 높인다. 재활 프로그램은 미술'원예'음악치료, 레크리에이션, 에어로빅, 사회기술훈련 등 필요에 맞게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산책하고 회의하는 환자들
이날 오후 3시, 잠긴 병동 출입구 앞에 외투를 걸친 10여 명의 환자가 차례로 줄을 섰다. 산책을 나가기 위해서다. 환자들은 매일 오전, 오후 각 1시간씩 병원 앞마당에서 시간을 보내는 '자유산책'을 할 수 있다. 주로 치료 순응도가 높고 병원 생활에 충분히 적응한 환자들이 대상이다.
환자들은 질환의 중증도에 따라 소규모 그룹으로 모임을 갖는다.
환자들은 보호병동 생활에서 느낀 불편함이나 개선 사항 등에 대해 얘기하고, 그룹 간 구성원을 이동시킬 때도 의견을 모은다. 실습을 나온 전지인(24'계명대 간호학과) 씨는 "생활 일정이나 치료 프로그램이 환자들 위주로 짜여지고, 환자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해 주는 게 굉장히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열악한 안정실 시설과 의료 인력의 부족은 아쉬운 점이다. 증상이 심하거나 다른 환자들을 자극 또는 해할 우려가 있는 환자는 안정실이라고 불리는 1인실에 격리된다. 처음 입원한 환자가 상태 관찰을 위해 사흘간 머무르기도 한다. 그러나 5㎡ 크기의 좁은 안정실은 병상 하나와 변기가 전부였다.
인력 부족도 심각하다. 입원 환자는 300명이 넘지만 돌보는 전문의는 6명에 불과하다. 병동마다 간호사와 보호사는 각각 1, 2명이 전부다. 대구정신병원 관계자는 "안정실은 법적 규정이 따로 없어 각 병원마다 주어진 여건 내에서 마련하고 있다"면서 "간호 인력은 적지만 간호실습생들이 하루 종일 도와주기 때문에 인력이 크게 부족하진 않다"고 설명했다.
댓글 많은 뉴스
한덕수 탄핵소추안 항의하는 與, 미소짓는 이재명…"역사적 한 장면"
불공정 자백 선관위, 부정선거 의혹 자폭? [석민의News픽]
헌정사 초유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제2의 IMF 우려"
계엄 당일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복면 씌워 벙커로"
무릎 꿇은 이재명, 유가족 만나 "할 수 있는 최선 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