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의 역사/이언 게이틀리 지음/박중서 옮김/책세상 펴냄
직장인들에게 출근과 퇴근은 익숙한 일상이다. 현대인들이 직장 바로 옆에 집을 구하는 대신 매일 아침 출퇴근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은 '좋은 직장'과 '쾌적한 집'을 동시에 원하기 때문이다. 이 목표를 위해 많은 직장인들은 오늘도 지옥철과 만원 버스, 도로 정체를 감수한다.
이 책 '출퇴근의 역사'는 현대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과'인 동시에 삶과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영역임에도 아직 제대로 탐구되지 않은 '출퇴근'에 주목한 사회문화사 책이다.
산업혁명과 철도의 발달로 일터와 집이 분리되면서 통근이 생겨나고, 도시 주변에 '교외'가 발전했다. 교외의 발달은 다시 자가용, 지하철, 자전거 등 다양한 교통수단의 발생 혹은 활성화로 이어졌고, '점심의 탄생'과 '밖에서 먹는 점심'의 일상화를 불러왔다.
그런가 하면 자가용 통근자는 '노상분노'(路上憤怒)와 같은 정서장애 등 이전까지는 없었던 신체적 심리적 문제를 경험하게 됐다. 하루하루 치르는 통과의례, 혹은 도망치고 싶은 일상의 지옥도로, 혹은 '버리는 시간'으로 간주되던 출퇴근에 깊은 사회적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오늘날 출퇴근은 전 세계 5억 명이 넘는 직장인들의 일상이지만, 철도가 개통되기 시작한 19세기 초반만 해도 '열차 이용'은 목숨을 건 모험이자 과거와 단절을 상징하는 파격적인 행위였다. 철도가 생기기 전까지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평생에 2번 런던에 가기만 해도 운이 좋은 축에 들었다. 그러나 1840년 철도가 개설되자 하루에 2번 런던에 간 사람의 이야기가 회자됐다. 요즘은 하루에 런던과 교외를 몇 번을 오가든 이야기 자체가 되지 않는다.
'집에 불을 피울 땔감을 구해오는 여정에 쓰는 시간을 낭비나 헛수고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통근 덕분에 이중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즉 집에서는 배우자이고 부모이고 반항하는 자식인 동시에, 일터에서는 효율성의 화신으로 특유의 초연함과 침착함과 합리성으로 존경받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니) 통근이라는 현실을 한탄하기보다는, 차라리 1세대 통근자들과 같은 개척자 정신을 되살려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통근은 그때까지 존재 고유의 특성이나 다름없는 고된 노동에서 벗어날 기회를 상징하는 동시에, 자신이 사는 세계를 개조할 자유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16쪽-
'그들은 더 이상 땅에 묶여 있지 않았고, 예전보다 빨리 부모에게서 독립했으며, 매년 한 번 있는 마을 축제 때만이 아니라 매일매일 낯선 사람들을 만났다. 또한 그들은 자기 배우자감이 인접한 곳에 농토를 갖고 있는지 따위를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관습도 변했다. 남자는 여자의 아버지가 아니라 여자에게 직접 청혼하게 됐다. 자신은 그녀의 지참금인 토지가 아니라 그녀 자체를 사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혼부부는 둘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했으며, 점차 대가족보다는 핵가족이 표준처럼 됐다. (중략) 도시 쥐의 분주함과 시골 쥐의 느긋함을 모두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53쪽-
영국의 잡지 '빌더'는 1856년 당시 통근의 의미를 이렇게 적고 있다.
'런던 주민에게는 이것이 도덕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더 낫다. 하루 일을 마치고 시골이나 교외로 가면 도시의 소음과 군중과 불결한 공기를 피할 수 있다. 또한 카지노와 무도장을 비롯해 내가 차마 거명조차 못할 온갖 복마전이 있는 인근 지역으로부터 가족을 멀리 떨어뜨려 놓을 수 있다는 것은 남자에게는 적지 않은 이득이라 하겠다.'
한편 통근은 대화와 여가의 시간이 되기도 했다.
19세기 미국의 통근자들은 이동 중 대화만 즐긴 것이 아니라, 온갖 종류의 놀이에 몰두했다. 승객들은 책을 읽거나 파이프 또는 시가를 피우거나 아령을 들거나 카드놀이를 했다. 통근자들이 매일 퇴근길에 4명씩 모여 앉아 카드놀이의 일종인 휘스트를 하는 일은 흔했다. 그런가 하면 철도와 도로 근처에 학교와 클럽이 생기고, 주택들도 가까운 곳에 지어졌다.
철도에 분개한 사람도 많았다. 철도 선로가 영국의 국토뿐만 아니라 계급체계에도 흠집을 냈으며, 철도 열풍이 지나간 뒤의 손실은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었다. 노선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철도가 우리 지역을 망치고 우리 하인을 버려 놓을 것"이라며 항의했다. 철도가 자연의 절경과 고대의 기념물들을 더럽히기 때문에 지역을 망친다는 것이었고, 노동에 종사하는 하인들에게는 철도가 단조로움에서 벗어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하인들을 버려 놓는다는 것이었다.
책은 통근이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냈으며, 도시의 형성과 성장을 촉진하는 등 생활문화 전반의 변화를 야기했다고 말한다. 그야말로 인류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는 '통근의 탄생, 성장, 승리', 2부는 '지옥철에서 냉정을 유지하는 법'이며, 3부는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시간'으로 가상통근, 통근의 종말 등 미래를 내다본다. 지은이 이언 게이틀리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지은 책으로 '담배와 문명' '알코올의 문화사' 등이 있다. 442쪽, 1만9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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