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수원지법의 한 형사합의부 재판부에 주심판사의 친척이 속한 법무법인이 변론을 맡은 사건이 배당됐다.
부산지법의 형사합의부 재판부에는 배석판사와 사법연수원 동기인 변호사가 맡은 성범죄 사건이 들어왔다.
수원지법과 부산지법은 해당 판사들로부터 이러한 사실을 보고받고 사건을 다른 재판부로 다시 배정했다.
이른바 '전관예우'를 막고자 형사재판에서 재판부와 연고 있는 변호사가 선임되면 다른 재판부에 맡기는 '재판부 재배당' 제도를 전국 대부분의 법원이 활성화하고 있다.
지난 8월 서울고법과 수원지법, 인천지법 등에서 이 제도를 도입했고 이후 부산고법·지법, 대구지법, 전주지법, 울산지법 등으로 확대됐다.
제도의 확산은 올해 초 불거진 '정운호 게이트'의 영향이 컸다.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법조로비 사건 수사 과정에서 전관예우나 연고 관계 등을 내세워 의뢰인에게서 100억원의 수임료를 받은 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와 정 대표로부터 1억8천만원대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인천지법 김수천 부장판사가 구속기소 되자 법조계 전반을 향해 의심의 눈초리가 쏠렸기 때문이다.
이에 각 법원은 기존 '법관 등의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의 '재배당 요청' 기준을 구체화한 재판부 재배당 활성화에 나섰다.
'재판장이 자신 또는 재판부 소속 법관과 개인적 연고 관계가 있는 변호사의 선임으로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오해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이던 두루뭉술한 기준이 '고교 동문, 대학교(대학원) 같은 과 동기, 사법연수원(법학전문대학원) 동기이거나 같은 재판부나 업무부서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경우' 등으로 바뀌었다.
서울고법과 수원지법, 인천지법 등 제도 도입 100일이 갓 지난 법원에서는 현재까지 적게는 1건에서 많게는 5∼6건이 바뀐 규정이 적용돼 재배당됐다.
지난달 1일부터 시행한 대구지법 등에서는 아직 사례가 나오지 않았지만, 법조계에서는 대체로 이번 제도로 전관예우를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실제로 이 제도를 지난해 8월 처음 도입한 서울중앙지법의 경우 올해 8월까지 1년간 50건이 재배당됐다.
재배당 사유별로는 재판장과 사법연수원 동기가 30건으로 가장 많았고 고교동문 9건, 대학 동기 8건,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대학 동기 1건, 주심판사와 사법연수원 동기 1건, 주심판사와 같은 재판부 근무 경험 1건 등으로 나타났다.
한 법원 관계자는 "법원 내부에서는 전관예우가 사라졌다고 보더라도 시민사회 등에서는 의혹의 눈초리가 많아서 전혀 연고가 없는 변호사의 사건을 맡는 게 옳다는 검토 결과에 따라 대부분의 법원이 서울중앙지법의 제도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수도권의 한 법원 관계자는 "뿌리 깊은 연고주의를 없애고 재판 공정성에 관한 오해가 상당 부분 해소됐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재판장이나 재판부 소속 법관이 변호사와의 연고 관계를 법원에 보고하지 않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점, 재배당으로 인한 과도한 소송 지연 등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광주변호사회 관계자는 "일부 전관예우 변호사들의 일반적이지 않은 수임 문제 개선이 기대되는 등 제도 자체는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보이지만 재배당을 거듭할 경우 오히려 소송이 과도하게 지연돼 당사자 이익에 궁극적으로 반하는 결과가 초래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장성근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장은 "제도 도입을 환영하지만 새로운 규정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판사 스스로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면 재배당을 요구하는 적극적인 참여가 뒷받침되어야 전관예우가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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