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러시아 혁명은 마르크스가 말한 '역사의 필연'이 아니었다. 볼셰비키도 혁명이 이렇게 갑자기 찾아올 줄 몰랐다. 레닌은 2월 혁명 한 달 전에 "우리처럼 나이 든 세대는 곧 닥쳐올 혁명에서 결정적 전투를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볼셰비키의 권력 기반도 허약했다. 볼셰비키 지지 세력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일대의 비숙련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소규모의 노동계급뿐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게 됐을까. 바로 2월 혁명으로 생긴 권력의 공백 때문이었다. 2월 혁명으로 케렌스키 정부가 들어섰지만, 정세를 통제할 물리력이 없었다. 1차 대전에서 러시아군이 독일군에 대패하면서 군대가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이다. 러시아 패잔병 수천 명이 무기를 버리고 도시로 돌아가거나 농촌에서 토지를 접수했다. 정부는 있었지만 사실상 무정부 상태였던 것이다.
볼셰비키는 이런 기회를 잽싸게 잡아챘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볼셰비키가 레닌의 '혁명 전위당 이론'에 맞춰 가장 잘 훈련된 당 조직을 갖고 있었는데다 무장세력(병사 소비에트)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닌이 주도한 1917년 10월 24일의 무장봉기는 소규모였지만 페테르부르크를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다. 구소련 공산당의 공식 역사는 10월 혁명을 지도자들의 치밀한 사전계획의 결과로 미화하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 때문에 러시아 혁명에서 볼셰비키의 역할에 대한 학자들의 평가는 매우 짜다. 영국 역사학자 E.H.카는 "차르 독재 타도에 대한 레닌과 볼셰비키의 공헌은 하찮은 것이었다. 볼셰비즘은 비어 있는 왕위를 계승한 것뿐이다"라고 했다. 독일 출신 미국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더욱 가혹하다. "볼셰비키는 길거리에 방치된 권력을 발견하고 습득했을 뿐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의 조건 없는 퇴진"을 위해 "모든 야당과 시민사회, 지역까지 함께 하는 비상기구"를 구성하겠다고 한 것은 볼셰비키의 '권력 줍기'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1917년 러시아처럼 정부는 있어도 식물정부인 '권력의 공백'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권력은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다. '비상기구'의 숨은 목적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성사 가능성도 높다. 여야를 통틀어 대권에 가장 접근해 있는 사람이 문 전 대표다. 그러나 빨리 먹으면 체하는 법이다. 권력 주워 먹기가 의도대로 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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