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이유로 시간여행을 하게 되는 '타임 슬립'을 소재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초현실적인 현상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며 특별한 사건과 로맨스를 만들어 낸다. '보보경심'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 '옥탑방 왕세자' '신의' 같은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과거나 미래로 이동하여 현재의 인물과 관계를 맺는다. 이때 서로 다른 시대를 사는 사람들 간에 생겨나는 문화의 어긋남이 하나의 로맨스 코드가 된다. '시월애'나 '동감' 같은 영화는 다른 시간대가 겹쳐지며 인연을 맺게 되는 두 남녀를 통해 시간의 다차원성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한다.
'가려진 시간' 역시 시간의 어긋남을 소재로 하는데, 이번에 사용되는 시간은 기존에 보기 힘들었던 독특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다. 세상은 멈춰 있는데 주인공에게만 시간이 흘러가서, 어느 날 두 친구가 만났을 때, 한 명은 어른이 되어 있고, 한 명은 여전히 아이다. 영화는 이러한 시간의 어긋남을 토대로 어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만의 세상을 그려낸다.
독립영화 '잉투기'(2013)를 연출했던 엄태화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이며, 강동원이 몸은 어른이고 정신은 아이인 소년을 연기하고,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데뷔한 아역배우 신은수가 영민한 소녀 역을 맡았다. 시간을 소재로 하는 로맨스 판타지 영화이다.
엄마를 잃은 후 새아빠와 함께 화노도로 이사 온 수린(신은수)은 자신만의 공상에 빠져 홀로 지낸다. 그런 그녀에게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성민(강동원)이 먼저 다가온다. 그들은 둘만의 암호로, 둘만의 공간에서, 둘만 아는 추억을 쌓아간다. 어느 날, 공사장 발파 현장을 구경하기 위해 친구들과 산으로 가고 그곳에서 모두가 실종된 채, 유일하게 수린만 돌아온다. 그리고 며칠 뒤, 자신이 성민이라는 남자가 수린 앞에 나타난다. 멈춰진 시간에 갇혀 어른이 되었다는 성민을 수린만이 믿어주는 가운데 경찰과 마을 사람들은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성민은 쫓기는 상황에 이른다.
10대 아이들의 모험 성장 서사는 영미권 소설과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하나의 장르를 형성하고 있다. 마크 트웨인의 소설 '허클베리 핀의 모험' '톰 소여의 모험', 영화 '구니스'(1985), '스탠 바이 미'(1986) 등 미스터리 성장물은 모험을 무릅쓴 용감한 아이들이 호기심에 길을 떠나고 거친 일을 겪으며, 우정을 다지고 어른으로 성장하게 되는 스토리로 전개된다. '가려진 시간'은 이러한 미스터리 모험 서사에 타임 슬립 로맨스를 섞는다. 시간의 다차원성에서 발생하는 어긋난 로맨스는 안타깝고 비극적이며, 그 일을 겪은 10대 주인공은 정서적으로 훌쩍 성장한다.
외로운 두 청소년이 첫사랑을 경험하며 추억을 쌓아나가는 것도 잠시,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짧은 모험이 예상치 못한 파국을 불러일으키며 이야기는 흥미진진해진다. 친구들과 산으로 놀러 갔다 수린은 홀로 돌아오고, 마을을 발칵 뒤집은 의문의 실종 사건 후 며칠 만에 성민은 어른이 되어 나타난다. 어른이 된 성민의 말을 믿어주는 유일한 존재인 수린이 비밀을 간직하자, 어른들은 이들의 관계를 유괴 범죄 사건으로 오인한다. 서로를 유일하게 이해하는 두 사람이 꾸미는 환상적인 아지트 공간과 시간의 멈춤을 표현하는 CG는 한국 판타지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상상력이 부족한, 지나치게 현실적인 어른들은 둘 사이를 유괴범과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진 소녀로 단정 짓는다. 영화의 진정한 주제는 '어른들은 모르는 아이들만의 세상과 규칙'이며, 더 나아가 '아이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완고한 어른들'이다. 겉보기에 30대 남자 어른과 10대 초반의 여자아이의 친밀한 관계를 관찰하는 것은 불편한 감정을 일으키는데, 아이들의 세상이 순수하고 때 묻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그 불편함은 상쇄된다. 하지만 아이들의 세상이 진짜 순수하기만 할까? 시기와 질투, 배신의 감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이들의 세상을 그리는 '우리들'(2016) 같은 영화가 현실에 훨씬 가까울 것이다.
'가려진 시간'은 상업 판타지 영화로서 충분히 가능성 있는 작품이고, 이 안에서 논리와 현실을 따지기는 어렵다.
박해일이 주연을 맡은 '소년, 천국에 가다'(2005)와 톰 행크스가 주연한 '빅'(1998)과 같은 영화는 아이가 갑자기 어른이 되어 여자 어른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로, 몸은 성장한 성인 남녀의 로맨스를 다루기 때문에 이들의 관계를 받아들이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가려진 시간'은 소녀와 어른 남자라는 보기에 편하지 않은 관계를 그리고 있다. 이러한 불편함은 강동원이라는 순수한 소년 같은 이미지를 가진 배우에 의해 무력화된다. 그러나 '어른의 시각에서 한 차례 걸러진 후 그려지는 아이들의 동심과 세계'라는 한계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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