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의 역사 간직한 국립박물관
세계 유물 대영박물관과 달라 충격
명성황후 시해당한 경복궁 오가며
박사학위 논문 '민영환' 주제로 삼아
첫 번째 한국 방문 이후 다시 한국에 오기 전, 내 인생에 중요한 변화가 찾아왔다. 한국 여성과 결혼을 한 것이다. 그러니까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다시 비행기에 오를 때 나는 더 이상 홀몸이 아니라 머나먼 나라 한국의 서울에서 신접살림을 꾸릴 새신랑이었던 것이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초빙교수로 일하게 되어 다시 한국으로 왔다.
김포공항에는 내 아내의 가족들이 나와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해서 나간 자리에는 아내의 친척들까지 모두 모여 있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비롯하여 두 명의 남자 형제와 네 명의 여자 형제, 수많은 삼촌과 숙모에 사촌까지 정말 많은 가족이 모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처음 몇 달 동안 우리는 서울 신문로에 있는 아내의 작은아버지 댁에 머물렀다. 그 집은 경복궁, 구 국립박물관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나는 국립박물관을 자주 찾았는데 이것이 내가 한국 역사를 공부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국립박물관을 처음 둘러보았을 때 대영박물관과 너무 다른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전 세계 각지에서 옮겨온 유물들로 가득 찬 대영박물관과 달리 한국의 국립박물관에는 한국만의 5천 년 역사를 오롯이 보여 주고 있는 유물들이 멋진 진열장에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영국의 대영박물관에서도 영국의 전통 공예품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에 솔직히 질투심을 느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품은 로비에 전시되어 있던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었다. 보살의 알 듯 모를 듯한 미소와 우아한 자태에서 뿜어져 나오는 평화로움과 다정함이 바로 한국인의 진정한 정신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경복궁을 산책하는 것도 즐겼다. 산책을 할 때 명성황후가 일본에 의해 잔인하게 시해되었다는 장소를 가로질러 가곤 했다. 그곳은 현재까지 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는 내 나라 영국의 여왕들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었다. 로마제국에 맞서다 죽은 보디케아 여왕부터 엘리자베스 1세와 빅토리아 여왕, 그리고 가장 긴 재위 기간을 자랑하는 현재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까지, 우리나라는 여왕의 나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내가 아무런 힘이 되지는 못하지만 일본제국주의의 잔인한 수탈에 용감하게 맞서다 죽음을 맞은 조선의 마지막 황후의 가슴 아픈 이야기에 더욱 마음이 움직인 것 같다. 아름다운 경복궁에서 벌어진 한국 역사상 가장 슬픈 이 이야기는 나의 박사 논문의 시작점이 되었다. 그로부터 7년 후 명성황후의 조카인 민영환은 내 박사 논문의 주제가 되었고, 이후 2002년 이 논문은 '민영환의 정치 인생'(Min Yonghwan: A Political Biography)이라는 제목으로 하와이대학에서 출판되기도 했다.
1987년 2월 한국에 온 후 곧바로 낮에는 경기대학교 수원 캠퍼스 영문학부에서 강의하고 저녁에는 서울 캠퍼스에서 강의를 하였다. 그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임기를 일 년 남겨 둔 해로 대학 캠퍼스들은 학생 운동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1987년은 데모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최루탄 가스를 맡으며 캠퍼스를 빠져나오려고 애썼던 기억이 남아 있다. 물론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 한국은 1988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확실하게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게 되었고 그 후 몇 년 안에 급변하던 정치적 상황들이 안정되었으며 1993년 마침내 민주 정권 수립에 성공하였다.
1987년 한국 생활 초기 무렵에는 서울 시내에 승용차는 얼마 되지 않았고 사람들은 대부분 버스나 지하철 그리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초록색 현대 포니 택시를 타고 다녔다. 서울 도심을 조금만 벗어난 시골에는 비포장도로가 더 많았다. 한국이 얼마나 빠르게 성장했는지를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한국인들이 그들에게 닥친 수많은 도전을 낙천적인 생각과 용기, 결단력으로 극복한 것을 기억한다. 또한 나는 한국이 최근에 직면한 여러 가지 위기를 극복하고, 그 위기로부터 더욱 굳건한 나라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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