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후반 탄핵이든, 하야든, 박근혜 대통령의 버티기든 어떤 경우에도 국무총리 자리가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급부상했다. 여기에는 박 대통령의 권력 공백을 '박의 남자'인 황교안 총리가 메울 수도 있다는 정치권의 우려가 작용했다. 그럼 대안은? 마땅한 카드가 없다. 유력 인사들 모두 한두 가지 흠들은 갖고 있다. 특정 정당이 비토를 놓고 특정 계파가 꺼리는 인물이라는 등이다. 자연히 원래의 모범답안이었던 김병준 총리 내정자 이름이 재부상했다. 최선의 답안은 문제 푸는 과정이 거꾸로 되는 바람에 '오답 처리'됐다는 김병준 카드가 최선이 아닌 모두의 차선으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다.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가 마침 지방분권운동대구경북본부 및 삼토클럽 초청 특강을 위해 18일 대구를 찾았다. 2015년 1월부터 격주로 2년간 '김병준의 대담'을 게재한 김 내정자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김병준의 대담 마지막 회로 '김병준 편'을 만들어 보았다.
지난 2년간의 마라톤 경주를 뒤돌아보는 기회를 갖자는 취지였지만 때가 때인지라 그가 생각하는 현 정국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지난 2일 국무총리 내정 발표가 있었으니 벌써 16일째 내정자 신분이었다. 지명 철회가 된 것도 아니고 인사청문회 일정이 잡힌 것도 아닌 공중에 붕 떠 있는 존재가 된 그의 생각은 보다 객관적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말미에 2년에서 한 달이 빠지는 시간 동안 쉼 없이 달려온 '김병준의 대담'에 대한 회고도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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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정국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정답도 없어 보인다.
▶대통령이 결심을 하지 않는 한 답이 없다. 어떡하든지 지금은 대통령이 2선으로 물러나는 것, 그다음에 내각이 제대로 구성되는 것이 제일 급선무다. 자꾸 야당이 조건을 거는 건 무리다. 2선 물러나라, 탈당하라는데. 2선이 뭐가 중요하나. 이미 대통령은 힘이 빠졌다. 새 총리가 들어가서 대통령을 실질적으로 2선으로 물러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대통령의 탈당은.
▶탈당은 더더욱 의미가 없다. 대통령도 의미가 없고, 야당한테도 의미 없다. 총리가 힘을 가지면 대통령의 당적이 아무 의미 없는데 그걸 전제조건으로 걸 이유가 없다. 그다음에 지금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한다고 해버리면 이미 그 내각에 들어온 사람이 전부 당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텐데, 대통령이 당적 가지고 있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나. 의미 없다. 어차피 새누리당은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 진짜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싸우지 않아도 될 걸 가지고 서로 밀고 당기고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황교안 총리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데.
▶제가 드리는 말씀이 이렇게(새 총리도 뽑아놓지 않고) 갈 것 같으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황 총리한테라도 힘을 실어주든가 해야 한다. 그런데 국민들이나 야당이나 황 총리를 권한대행 체제로 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니까, 동력을 다 잃어버렸다. 지금 주변 세계를 돌아봐라. 트럼프 변수만 해도 그렇고, 자본시장 너무너무 불안하다. 불과 1주일 새 원화가치가 3, 4% 떨어졌다. 원화가치가 떨어지면서 벌써 외국자본이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금리 상승에 대한 대책은 있나. 조선이니 해운이니 그런 문제는 우리가 이미 아는 문제고. 철도파업이 벌써 50일 넘었다. 물류시장을 왜곡시키고 있다. 이런 문제들이 곪아 가고 있는데 정부가 아무것도 못한다. 국가 전체가 겉보기는 멀쩡해도 국정을 아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곳곳에서 곪고 있는 것들이 보인다.
-검찰 수사도 진행 중이고 특검도 예정돼 있는데 뭔가 더 터져 나오면 수습 불가능 상황이지 않은가.
▶어떤 게 더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한 가지 이런 건 있다. 정서상 보면 굉장히 용납할 수 없는 죈데 법리적으로 보면 그다지 생각하는 만큼 중대하지 않은 것이 있다. 국민 정서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지만 법적으로는 이런 부분들이 있어서 그것은 지켜봐야 한다. 법리, 수사 과정이나 재판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굉장히 많을 것이다.
-야당에서 U턴을 하지 않는 이상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다.
▶저는 늘 관중과 프로선수는 달라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관중은 관중으로서, 프로선수는 프로선수로서 자기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야당이 대안을 내줘야 한다. 정국 수습에 관한 대안을 내줘야 한다. 대안 없이 계속 대통령을 몰아붙이면 국정혼란밖에 없다. 그래서 빨리 총리 문제부터 해결해서 총리로 하여금 대통령을 대신해서 국정을 챙기게 하고 그다음에, 아니면 그것과 동시에 탄핵을 하든가, 하야 요구를 하든가 하라는 것이다. 국정을 내팽개치고, 국정이 표류하고 있는데 이걸 수습할 생각을 안 한다는 건 무책임한 거다.
-이번 기회에 개헌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가.
▶개헌 문제는 스리 트랙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트랙으로는 하야를 하든 탄핵을 하든 지금 대통령에 대해서 분노와 좌절을 표시하고 그다음에 대통령을 비판하고 내려앉히든 끌어내리든 그쪽으로 가고, 또 한쪽으로는 책임총리든 거국내각총리든 총리를 중심으로 국정을 챙기는 쪽으로 가고. 또 한쪽으로는 개헌으로 가야 한다. 세 트랙으로 가줘야 한다. 왜 못하느냐. 할 수 있다.
-총리 지명받을 때의 이야기를 해달라.
▶대통령을 만나서 처음 거국내각해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합의가 언제 될지 모르는 상황. 국정이 표류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마냥 국정을 던져둘 수 있느냐. 단 1% 총리 인준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지나칠 수 없고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냥 지나갈 수 없어서, 외면할 수 없어서 그랬다. 말하자면 국가가 내 눈에 봐서 환잔데, 내가 돌팔이 의사라도 의사 짓을 좀 한 사람인데, 그런 입장에서 그냥 지나갈 수 없어서 그랬던 거다. 여야가 합의로 총리를 추대하면 대통령 뜻과 관계없이 그만두겠다. 여야 합의로 새로운 총리를 만들어내면 그만두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언제든지 합의 봐오면 나는 소멸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못 봐오고 있다.
-박 대통령의 남은 임기 1년 3개월 동안 총리 자리가 너무 어려울 것 같은데.
▶다음 총리에게는 권력은 없다. 권한도 없다. 오로지 책임만 있다. 나중에 끝나고 나면 상처밖에 없고 영광은 없다. 뒤로는 대통령이 살아 있다. 아무리 힘없는 대통령이라도 서명권을 갖고 있다. 서명을 받기 위해서 총리는 설명을 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야 3당을 쫓아다니면서 여기저기 부탁하고 애걸하고 그래야 한다. 도처에 문제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런 총리가 살아남겠나. 총리 리더십이 살아날 수 없는 내각이다. 그 속에서 총리가 만신창이가 돼서 나올 가능성이 100%이다. 또한 이 총리를 추대하는 집단은 국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 야당으로서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더 혼미해지는 것이다. 참으로 답답한 상황이다.
-남은 기간 가장 중요한 총리의 역할이 무엇인가.
▶남은 1년 3개월 동안 대통령이 그나마 연착륙을 하도록 하고 방향을 잡아줘야 한다. 총리가 상당히 역량 있는 총리가 돼야 하고. 여야도 설득해 가면서 다양하게 구성되는 내각의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논리, 가치 이런 걸로 해야 한다. 힘으로는 못 한다. 자칫 총리가 대통령 이상으로 부서지고 무너질 수 있다. 꽃방석이 아니라 바늘방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을 챙길 수 있는 사람은 빨리 앉히고 그다음에 대통령도 여야도 총리에게 조각권을 줘서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래야 국정이 돌아간다. 앞으로 첩첩산중이다.
-야당이 저렇게 헤매고 가닥을 못 잡으면 다시 보수들이 재집결할 수도 있는가. 3주째 지지율 5%인데 리바운드가 가능하겠는가.
▶조금은 나아질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지지세력 재결집 등을 생각하면 안 된다. 그나마 지지율을 회복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 대통령이 빨리 2선으로 물러서는 방법이다. 감당할 수 없는 책임에서 벗어나면 그나마 지지율이 조금 나아질 수 있다. 일단 2선으로 물러서고 나면 굳이 탄핵을 할 이유도 하야를 요청할 이유도 줄어드는 것 아닌가.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대통령이 자꾸 헌법적인 표현에 구애받는 것 같다.
-대통령이 왜 동정의 대상이 돼야 하나. 존경과 지지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늘 거꾸로였다. 국가가, 정부가 지금 국민을 걱정하는 게 아니고 매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고, 국민이 대통령을, 국회의원을 걱정하고 있다.
◆김병준이 뒤돌아본 '김병준의 대담' 2년
정말 처음에는 굉장히 부담을 가지고 맡았다. 처음에는 칼럼을 쓰라고 하는데 도저히 글을 쓸 시간은 없고, 그래서 제가 만난 사람과 얘기한 걸 가지고 그림을 그려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시작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글 쓰는 것보다 시간도 더 많이 걸리고 섭외도 해야 하고 가서 만나야 하고 원고를 정리하는데 분량도 적지 않았다. 200자 원고지 30매나 되니까. 그러나 역시 다양한 분들로부터 내가 몰랐던 인생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분이 몇몇 있다. 김병일 전 기획예산처 장관은 늘 보던 양반인데 그 양반이 마라톤 12번 종주했다니, 그것도 퇴직하고 난 다음에. 깜짝 놀랐다. 다시 그 양반 책도 다 읽어보고 인생의 많은 부분을 배웠다. 인순이도 그랬다. 그 쉽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단단한 내공 그런 것들을 들을 땐 눈시울이 불거질 정도였다. 그 아픈 고민들을 털어놨을 때 감동적이었다. 너무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서 좋았다. 역시 간접적으로 남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게 좋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또 젊은 친구들 중에서 혁신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도 접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젊은이들 가운데 완전히 또 다른 형태의 삶, 특별한 분야에서 자기 업을 이루려고 하는 열정, 그런 젊은이들이 곳곳에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시리즈 첫해에는 첫 번째 손님이 윤여준 선생, 박세일 선생이었다. 그분들은 연락하니까 흔쾌히 오케이해 주었다. 고마웠다. 나중에 시리즈로 나가니까 누구도 했고 누구도 했고 큰 흐름이 만들어졌다, 그때는 자기도 빠지면 안 되겠다는 이야기가 있어서인지 섭외가 쉬워졌다, '나는 한 번 안 해주나'는 분도 있었다. 2015년 1년을 정리해서 책을 펴냈는데 지금 다시 봐도 잘 만든 책이다. 한 나라를 운영하는 지혜를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는 그런 것들이 담겨 있다,
이번처럼 고향에 기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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