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멈과 함께할 수 있으니까 그저 다 좋아. 드레스 입은 우리 할멈 정말 예쁜데 이 사람이 너무 아파 보여서 참 마음이 짠해요."
환자복 대신 양복을 차려입고 나비 넥타이를 맨 김영봉(89) 씨는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참았다.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김 씨는 허리를 곧게 세웠다. 김 씨의 곁에는 곱게 화장을 하고 한복 드레스를 입은 아내 천연해(86) 씨가 서 있었다. 천 씨는 온 힘을 다해 분홍 장미 부케를 꼭 쥐었다. 폐암으로 호스피스병동에 입원 중인 부부는 70년 전 백년가약을 맺었던 '그날'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지난 18일 오전 대구보훈병원. 삶의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결혼 70주년을 맞은 두 사람의 금강혼식이 열렸다. 회의실 벽에는 풍선이 내걸렸고, 부부가 내딛는 길에는 꽃잎이 쏟아졌다. 40여 명의 호스피스병동 봉사자들은 하객으로 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은 노부부가 입장하기도 전에 눈물을 흘렸다. 가족들은 편지를 낭독하고 부부에게 큰절을 올렸다. 큰딸 김성희(70) 씨는 "뒤돌아 볼 여력 없이 살아오다 보니 부모님께 못 해드린 것만 자꾸 생각이 난다"며 "두 분이 한날한시에 함께 편안히 돌아가셨으면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다.
부부는 올 6월과 9월 나란히 폐암 진단을 받았다. 김 씨가 오래도록 피웠던 담배가 김 씨의 폐는 물론, 아내 천 씨의 폐까지 망가뜨린 것이다. 노쇠한 부부는 치료를 포기하고 한 달 전 대구보훈병원 호스피스병동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1946년 결혼해 포항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첫딸을 낳고서 6'25전쟁에 참전한 김 씨는 팔을 다쳐 집으로 돌아왔다. 어려운 형편에 7남매를 키우기 위해 부부는 농사에 매달렸다. 좋은 옷을 입지도, 경치 좋은 곳에 다니지도 못했지만 알뜰살뜰 살며 자녀들을 대학에 보냈다. 이제 부부가 마주 볼 수 있는 시간은 3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노부부는 여전한 금슬을 자랑한다. 김 씨는 원예치료 시간에 만든 꽃다발을 들고 아내를 찾아가 프러포즈를 하는 낭만이 있다. 김 씨는 매일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거동이 힘든 아내의 병실을 찾아간다.
이상흔 대구보훈병원 병원장은 "두 분이 함께 병상에 계시면서도 남편이 아내를 챙기시는 모습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남은 인생 동안 두 분이 행복하시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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