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살벌한 지방자치 풍경

지금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다. 안으로는 '게이트' 정국과 바깥으로는 미국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굳이 공통점을 찾으라면 대통령제를 채택한 나라들이다. 어떤 대통령을 선출하느냐에 따라 한 나라의 운명이 걸려 있다. 그런데 이 운명이란 것도 위험천만한 벼랑 끝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단 한 표라도 더 얻은 이가 권력을 쥐는 방식 때문이다.

정치와 정책이라는 것이 자동차 핸들 꺾듯이 급하게 꺾을 수는 없겠지만 정권을 잡은 측과 잃은 측의 상실감은 극명하다. 이런 '승자독식' 제도의 모순은 조그만 지방자치단체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지자체는 소왕국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전제정치를 일삼던 봉건적 왕조시대에 비유하는 것이다. 시골 마을들이 한마디로 죽느냐 사느냐 하는 전쟁터로 변해있다. 이긴 자는 점령군이 되지만 진 자는 패잔병에 포로 신세가 된다. 모든 경제적인 혜택과 정치적인 입김, 사회적인 권위들이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린다.

내가 알고 있던 어느 업자는 지자체장이 바뀌자 그야말로 일주일간을 앓아누웠다고 한다. 심지어 아예 고향을 등지고 이사를 가버리기도 한다. 미국의 트럼프가 당선되자마자 이민 사이트가 접속자 수 초과로 마비되었다 하니 그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

분명 '승자독식' 제도가 갖는 그늘이다. 특히나 인구 몇 안 되는 조그만 시골 공동체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적과 아군만 있을 뿐이다. 없는 죄목을 만들어 누명을 씌우기도 하고 온갖 유언비어와 루머로 공동체가 피폐해지고 있다.

사람을 만날 때 저 사람은 누구 편이냐를 끊임없이 탐색해야 하며 탐색이 끝나야 친밀의 정도가 달라진다. 지방자치제 시행 20여 년 만의 살벌한 풍경들이다. 자치제의 긍정적인 측면의 밑바닥엔 공동체의 붕괴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지방자치제도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낼 방안은 없는 걸까? 혹시 지구상에 다른 훌륭한 제도는 없는 걸까? 아님 역사적으로 본받을 만한 공생 방안은 없었던가? 우리의 역사 속에선 삼국시대의 합좌(合坐)제도가 있었다. 특히 신라의 화백(和白)제도는 만장일치제로 귀족과 왕권을 견제하는 제도로 통했다. 구성원들이 만장일치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고 상대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그 고민까지 상상할 수 있는 제도이다.

물론 완벽한 제도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적어도 결정과 선택의 소외자는 없을 것이다. 현재의 제도로서는 스위스의 정치제도와 지방분권제가 있다. 연방의회에서 선출된 7명의 부처 장관이 윤번제로 돌아가면서 1년씩 대통령을 지내고 직접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마트의 영업시간, 상하수도 요금, 고속도로 통행료 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주민투표에 부친다. 작지만 민감한 사안을 수시로 직접선거로 결정한다. 물론 결정에 승복하고 뒷말이 없다. 오랫동안 다져진 성숙함 덕분이다.

지자체의 경우, 주민투표를 사안마다 진행하고 주민들이 읍'면장을 선출한 다음 자치단체장은 윤번제로 돌아가면서 맡게 한다면 어떨까? 요즘 대안으로 떠오르는 '서열투표제'는 또 어떨까? '승자독식'이 아니라 후순위를 탈락시키면서 과반이 될 때까지 합종연횡 식으로 서로 조율해가는 방식이다. 유럽의 많은 내각제 국가들이 유사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현행 승자독식 지방자치 선거 탓에 공동체가 파괴되고 있다면 지자체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제는 약육강식과도 같은 저급한 제도를 탈피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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