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숨은 민심이 진짜 천심이다

서울과 전국 각지에서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언론은 앞다투어 온 국민의 민심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한다며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10,800원이라고 적힌 전기료 고지서가 아니었다면 오늘이 10월인지, 11월인지도 모른 채 2016년도 이제는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고 지나칠 뻔하였다. 한 달에 두세 번 들르는 사무실 전기료가 왜 이렇게 많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다가오는 겨울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방 안에서 입김이 서릴 정도만 보일러를 돌려도 가스비와 전기료가 한 달에 20만원이 넘게 나온다.

서민들은 정치가 무엇인지 모른다. 아니 알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서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먹고사는 일에 쪼들리지만 않으면 되는 국가의 조건이다. 그런데 지금의 대한민국은 서민들이 나라를 탓해야 하는 상황에 빠져들었다. 몇 년을 끌어 온 불황의 경기가 곧 좋아지겠지라는 기대를 저버린 것도 모자라서 아예 끝도 없는 경기 침체에 빠져 버린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고 묵묵히 살아가는 서민들은 전 국민의 몇 퍼센트나 될까? 정작 살려 달라고 아우성치고, 정부의 무능을 탓하며 길거리로 뛰쳐나가 집단 시위를 하여야 할 서민들은 오히려 서울의 애국집단 집회에 참석하기조차 어렵다.

오늘 벌지 않으면 당장 내일의 끼니를, 전기료를, 가스비를 낼 수가 없기 때문에 일터를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내일 내어야 할 경비를 대신 내어줄 테니 집회에 참가해 달라고 하더라도, 우리 서민들은 어려운 경제 사정에, 혼란스러운 오늘날의 사태에 악에 받쳐서 울부짖거나 아니면 마스크를 쓰고 비통한 심정으로 침묵의 시위를 하였을 것이다.

언론에 나온 패널들은 한결같이 국민의 소리라며, 천심이라며 초헌법적인 사태를 요구하는 국민의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연일 떠들고 있다. 그나마 조심스러운 패널들은 100만 촛불의 민심이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온 국민의 뜻이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이런 주장을 하는 높으신 양반들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당신들은 어느 나라 국민이기에 어린애를 유모차에 태우고 집단 행렬에 묻혀 웃음을 날리며 시위를 하고, 잔칫집처럼 웃고 떠들며 시위 자체를 즐기는가를 묻고 싶다.

우리 서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잔치가 아니라 애걸과 비통함을, 현실의 실존을 위한 최소한의 생존 욕구라도 채울 수 있도록 나라의 안정을, 생산적인 조치를 취해달라는 것이다. 100만 민심을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위를 하러 거리로 나갈 형편조차 되지 못하는 사람들, 그 시간에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전기가 끊길까, 가스가 끊길까를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서민들도 많이 있다. 대체 이 사람들의 목소리는 누가 귀를 기울이고, 누가 보듬어 안을 것인가. 100만 촛불집회에 참가하려 해도 참가할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아 벙어리 냉가슴 앓듯 끙끙대며 앓고 있는 서민들도 이 나라 국민이고, 그 서민들의 현실이 바로 천심이다.

위정자들은 선거 시기에만 머리를 조아리지 말고 서민들의 처지를 제대로 헤아려 발전적인 국정 행위를 하여야 할 것이다. 헛심 쓰지 말고, 그럴 힘이 있다면 황폐한 이 나라를 하루빨리 개간하여 온 국민이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씨앗을 뿌리기에 전념하여야 할 것이다. 촛불을 밝힌 100만 명의 목소리만이 아니라, 올겨울을 나기 위해 땀과 눈물을 흘리는 서민들의 근심이야말로 진정한 천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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