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촛불에 눈 감고, 지축을 흔드는 "물러나라"는 함성에 귀 막은 박근혜 대통령이 이제 믿는 구석이라고는 새누리당의 진박 지도부밖에 없는 것 같다.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는 민심을 등지고 국민의 소리를 외면하는 것이 박 대통령에 대한 '결초보은'(結草報恩)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들로부터는 이미 탄핵을 당한 거나 다름없는 박 대통령을 끝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것이 자신들의 존재 이유라는 거다. 이들은 박 대통령과의 절연(絶緣)을 주장하는 비주류를 향해 "누구 덕에"라고 다그치며 '배은망덕'(背恩忘德)으로 겁박을 해댄다. '박근혜는 아니다'는 민심보다 '민심도 거스르겠다'는 박심이 더 소중하다.
이들은 박근혜당과 동의어인 새누리당 간판을 꼭 붙들고 있다. 새누리당은 2012년 당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고집을 해서 한나라당 간판을 내리고 바꿔 단 간판이다. 최순실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 그 새누리가 '새세상'이 되고, '신천지'가 된다는 이야기에 새누리당 식구들은 낙담천만이었을 거다. 심지어 '순시리당'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국정 곳곳 손을 뻗치지 않은 데가 없었다는 소문이고 각종 선거의 공천에도 입김을 불어넣었다고 하니 당 간판 교체에도 최 씨가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 알 수 없다.
박근혜의 그림자와 최순실의 입김이 짙게 드리운 새누리당으로서는 민심을 더 이상 담아내기가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진박들의 막무가내식 박근혜 호위와 새누리당 간판 지키기를 충성심의 발로라고 미화할 수도 없다. 충(忠)이라고 하려면 정의(正義)가 전제돼 있어야 한다. 한 달 전만 해도 수족 같던 검찰에 의해 하루아침에 피의자가 된 박 대통령이고, 범죄 집단이 돼 버린 청와대인데 불법이라도 따르겠다는 건 이성의 발로가 아니다.
22일 새누리당을 탈당한 남경필 경기지사가 "특정 권력에 맹종하며 불의와 불법에 눈감고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게 되면 사이비 종교 집단과 다를 게 없다"고 한 말은 뼈아프다. 민심을 외면한 박 대통령과 진박들을 향한 통렬한 비판이다.
물론 과거에도 정치적 고비마다 탈당과 분당은 있었다. 당권 경쟁에서 밀려나고, 공천에서 탈락하고, 후보 자리에서 밀려나고 사연은 제각각이었다. 사람이 미울 뿐 집이 싫어서 떠나는 건 아니라며 살아 돌아오겠다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실제로 생환율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새누리당 발 탈당은 차원이 완전 다르다. '탈당=오리알'이라는 등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새누리당은 4'13 총선 때 이미 한 차례 사경을 헤맨 적이 있다. 최순실 사태는 민심으로부터 새누리당을 떼어내는 확인 사살이었다. 내년 대선 때까지 새누리당이 멀쩡할 거라고 기대하는 이는 별로 없다. 새누리당 간판 그대로 누구를 내세워 표를 달라고 할 건가. 이정현 대표마저 새누리당을 '상한 국'이라고 표현했을 정도이니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상한 국은 다 쏟아버리고 새로 끓이는 게 정답이다. 미련을 가져봤자 배앓이만 할 뿐이다.
문제는 국그릇 운영권이 전적으로 진박들 몫이라는 점이다. 총선 때 화제로 떠올랐던 옥새도 진박 손에 들어 있다. 국을 먹을 수도 쏟을 수도 없는 이들은 나가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지금까지 새누리당 울타리가 그나마 온존할 수 있었던 건 먼저 쪽박을 깼다는 소리를 듣는 게 부담스러워였다. 마음은 굴뚝같으면서도 누구도 퍼스트 펭귄으로 선뜻 나서지 않아서였다. 사생결단식 정치의 부작용이기도 했다.
서로를 향해 '죽어라'고 총질을 해대는 게 새누리당의 오늘이다. 그래도 하나로 있으라는 건 고문이다. 진박과 비박이 헤어질 이유는 충분하다. 탈당이 마냥 욕먹을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앞날을 속단할 수는 없다. 다만 새누리당을 떠나려는 이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고집하는 이들보다는 민심에 더 가깝다는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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