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병구의 서울생활, 어떻습니까?]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

"에너지 소비 최고점에 달한 지금, 바다 에너지로 눈 돌려야"

▷1952년 대구 출생 ▷서울 혜화초
▷1952년 대구 출생 ▷서울 혜화초'경기중'경기고 졸업 ▷서울대 행정학과 졸업 ▷미국 미시간대 법학'경영학 석사, 하버드대 신학 석사 ▷대성산업㈜ 상무, 그룹 기획조정실장 ▷창원기화기공업㈜ 상무 ▷대성그룹본부 상무'부사장 ▷대성정기㈜ 대표 ▷대성산업㈜ 대표 ▷경북도시가스㈜ 대표 ▷한국케이블TV 경기방송㈜ 회장 ▷한국도시가스협회 회장 ▷대성그룹 회장(현) ▷세계에너지협의회 회장(현) 사진'이성근 객원기자

국내 굴지의 에너지기업을 이끌고 있는 김영훈(64) 대성그룹 회장. 경영학'법학'신학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은 김 회장은 지난 1988년부터 지금까지 에너지 기업에 몸담아오면서 출판'문화사업, 금융'IT, 패션사업에까지 분야를 넓히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에너지협의회(WEC) 회장에 취임, 에너지 관련 글로벌 및 지역별 이슈를 주도해 나가고 있다. 김 회장으로부터 사업 성공기와 함께 에너지산업의 현황과 발전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국궁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활쏘기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나.

▶중국이 삼국시대 장비와 여포를 비롯해 창을 많이 사용했다면 일본 사무라이는 칼, 한국은 고주몽부터 안시성 전투의 양만춘, 조선 이성계, 이순신 장군에 이르기까지 활쏘기에 능했다.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은 수나라 대군이 쳐들어왔을 때 평양까지 질서정연하게 후퇴했다 막판 대반격을 통해 큰 승리를 거뒀다. 살수대첩이다. 이것을 보면서 활의 전략과 같다고 생각했다. 활은 표적이 앞에 있지만, 힘은 후진해 '만작'한(활시위를 한껏 당김) 다음 '발시'(활을 쏨)를 한다. 끝까지 후퇴하다 적군이 지칠 때쯤 반격해 전멸시키는 것이 활의 전략과 비슷하다.

-이순신 장군의 전략도 활과 연관돼 있다고 보나.

▶'난중일기'를 보면 활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해전에서 아군의 배와 적군의 배가 모두 흔들리고, 바람의 영향을 받는 상황에서 쏘는 활은 고차원적인 직관과 직감, 과학성이 고려돼야 한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에서 사용한 전략도 활의 전략과 다르지 않다. 왜의 수만 해군이 밀고 들어올 때 선봉이 최대한 뒤로 물러서며 학익진을 구사해 적을 물리친 것이다. 활 시위를 최대한 뒤로 당기면 결국 학의 모양이 된다. 조선시대까지 우리 군의 전략과 작전 속에는 활이 생활화돼 있었다고 본다.

-활의 원리를 회사경영에도 접목할 수 있나.

▶회사의 투자 사이클이 활 사이클과 굉장히 비슷하다. 사업의 핵심은 투자인데, 투자는 시점이 매우 중요하다. 창업이나 벤처 투자에서 위험성, 기술력, 수익성 등 여러 차원의 검증이 필수적이다. 위험 요인을 최대한 감안해 회사가 투자로 인해 나빠지면 어디까지 나빠지고, 최악의 경우 어디까지 물러설 것인지 등을 판단한 뒤 자신이 있을 때 투자해야 한다.

-대성그룹 발전의 분기점이 된 사업은 무엇인가.

▶케이블TV에 투자하면서 우여곡절을 겪었다. 김영삼 정권 막바지에 전국적으로 케이블TV 경기방송 사업자로 응모해 사업권을 따냈다.

매력적인 사업이었지만, 당초 한국전력이 케이블TV 통신망을 깔아주기로 했다가 사업에서 빠지면서 인프라 투자에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 결국 매월 30억원씩 손실이 나고 빚이 1천억원에 달하는 등 부실기업이 됐다. 골머리를 앓던 중 뜻밖의 상황을 맞았다. 미국 사업자들이 홈쇼핑의 주요 수단으로 케이블TV에 눈독을 들인 것이다. 골드만삭스 등이 우리한테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을 제시한 바람에 매각을 통해 빚을 청산한 것은 물론 경영 호전에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

-성공적인 투자나 사업내용을 꼽는다면.

▶창업투자회사 인수와 쓰레기매립장 폐기물자원화 사업도 성공적이다.

정부는 IMF 외환위기 이후 은행 부실을 바로잡는다며 금융권의 은행 외 부대사업을 매각하는 등 처분하도록 권유했다. 창투사 인수를 위해서는 투자금이 많이 필요했지만, 전국적인 기술동향을 알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대성창업투자㈜를 인수했고, 지금 잘 운용되고 있다.

대구 방천리위생매립장 폐기물자원화 사업은 가장 보람을 느끼는 사업이다. 쓰레기매립장을 전국의 대표적인 친환경 시설로 바꿨기 때문이다. 매립장에서 나온 미생물을 발효시켜 가스로 전환하면서 수익을 올리고 환경도 개선하는 등 다양한 효과를 내고 있다.

-그룹 경영의 최대 기회와 위기는 언제였나.

▶김영삼 정권 말기 외환위기를 맞아 상당수 대기업이 무너지면서 대성그룹이 재계 10위권에 올랐다.

김대중 대통령이 외환위기 직후 국내 투자를 권유하기 위해 미국의 억만장자이자, 투자의 귀재인 조지 소로스를 한국에 초대했다. 소로스는 외환위기에 휘청되지 않는 건실한 기업을 물색하다 대성그룹을 찾았다. 조선호텔에서 식사를 하며 공동사업 몇 가지를 제안해왔다.

경영상태가 좋지 않은 주택은행을 인수해 주택담보대출사업을 하자는 제안을 비롯해 서울증권 인수, 서울시내 큰 빌딩 인수 등 공동사업을 제안했다. 투자에 보수적인 아버지의 생각에 따라 소로스의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좋은 기회였는데 안타깝다. 이처럼 항상 위기 앞에는 기회가 동시에 주어진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서 전 세계가 우려를 하고 있지만, 또 다른 기회일 수 있다.

-미래 성장을 위해 중점을 두고 있는 신기술 연구는 어떤 것이 있나.

▶미래 신산업의 핵심 요소를 미생물이라고 보고, 여기에 연구력을 집중하고 있다. 미생물은 90% 이상이 해양에 있기 때문에 해양 미생물에 관심을 쏟고 있다.

쓰레기에서 메탄가스가 나오듯 광합성 능력이 있는 해양 미생물에서 경유를 생산할 수 있다. 미생물에 전자를 먹이면 메탄을 생산하고, 유기물을 먹이면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등 해양 미생물의 세계는 상상 이상이다.

산업혁명 이후 석탄, 기름, 이산화탄소 등을 중심으로 한 경제를 '블랙 이코노미'라고 한다면 향후 (에너지) 변환이 필요 없는 바다 에너지를 '블루 이코노미'라고 부를 수 있다. 블루 이코노미는 에너지뿐 아니라 식량, 물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현재 에너지 산업은 어떤 단계인가.

▶지금은 에너지의 대전환기이다. 에너지 소비가 피크(최고점)에 달하고 있다. 에너지 효율이 크게 높아지고, 신재생에너지가 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 출현으로 디젤과 가솔린 수요가 대폭 줄고, 냉장고 등 에너지 효율은 크게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기름의 수요량도 피크가 된다. 2030년 이후 기름 소비량도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알래스카의 기름 채굴을 허용하는 등 기름 생산량을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반면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이달 초 '오일 수요 피크'를 발표했다. OPEC은 미국이 기름을 대폭 증산할 경우 급속히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오일 수요 피크를 선언함으로써 미국 오일 인프라 사업자들이 투자를 꺼리도록 전략을 구사한 것으로 보인다.

-향후 에너지산업의 전망은.

▶석탄, 석유, 가스 등 연소를 바탕으로 한 에너지 경제에서 태양광 등 (에너지 연소가 없는) 비연소 에너지 바탕 경제로 옮겨가고 있다. 특히 에너지는 자원을 기반으로 한 산업에서 기술 및 지식기반 산업으로 급속히 바뀌고 있다. 에너지산업이 중동 중심에서 동북아로 옮겨오고 있다. 전기차 기술력에서 앞선 중국 등이 기술기반 에너지산업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자원은 없지만, 지식과 기술력 있는 한국도 희망이 있다.

-지난 10월 세계에너지협의회(WEC) 회장에 취임했다. 앞으로 WEC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

▶2가지에 중점을 두고 추진할 것이다. 하나는 '기술로 돌아가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식량, 물, 에너지의 결합'이다.

19세기 초 마이클 패러데이가 전기의 원리를 발견해 발전기를 만든 것처럼 다시 기술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에너지 수요가 피크가 된 상황에서 각국은 '에너지의 안전한 공급'에서 '지속가능한 에너지 환경'이 필요하게 됐다. 여기서 돈 많은 나라가 에너지와 환경을 모두 차지하는 '에너지 파워'의 문제가 생긴다.

이 같은 에너지 전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심청이 아버지 심봉사를 찾기 위해 잔치를 벌였던 것처럼 '제2의 패러데이'를 찾기 위해 최고의 금융자본가와 최고의 기술자가 만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려고 한다. 제2의 에너지 혁명을 이끌 인재를 찾겠다는 것이다.

WEC의 또 하나의 방향은 식량-물-에너지를 연결 또는 결합시키는 것이다.

인류에 필수적인 3가지 요소는 서로 상호작용한다. 가뭄이 들면 수력발전이 어려워지고, 물을 수송하기 위해서는 끌어당기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옥수수로 생산한 에탄올, 콩으로 생산한 디젤 연료 등과 같이 식량, 에너지, 물 등은 상호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국제포럼과 연구 등을 통해 이 3가지 요소의 발전적 연계와 결합을 위해 노력하겠다.

-개인적인 주요 관심사는 무엇인가.

▶국민들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은 남해안에 '이순신 테마파크'를 만드는 것이다. 부산(부산포해전)에서 명량(명량대전)을 잇는 구간을 교육'역사문화의 장으로 꾸미고 싶다. 이곳에서 세계적인 해전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 구간에 거북선을 만들어 실제 타보고, 해전 재현 프로그램도 운용할 수 있다. 당시 공격과 후퇴의 신호로 활용됐던 연을 이용한 게임도 즐길 수 있다. 이 지역의 일부 땅도 구입했는데, 주변 땅값이 너무 올라 진척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전체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의 협조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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