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한민족의 선(善) 한 공유(共有)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失政)과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박 대통령은 탄핵 소추라는 국회에 의한 정치적 사형선고를 앞두게 됐다. 국회 통과 탄핵 소추가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결 때까지 사형 집행은 미뤄지겠지만 사실상 사형수나 다름없다. 빨간 죄수 번호의 교도소 사형수가 사형일을 기다리며 최고(?) 대접을 받는 '최고수'(最高囚)처럼 말이다.

박 대통령이 자초한 일이다. 1974년 어머니(육영수) 서거로 실의에 빠진 1975년, 최태민 목사가 보낸 '어머니 뒤를 이어 꿋꿋이 잘하라'는 한 통의 위로 편지(박 대통령 증언)로 맺은 최 목사와의 첫 인연이 딸(최순실)로 이어지는 악연(惡緣)을 제 때 못 끊고 제대로 다스리지 않아 빚어진 재앙인 셈이다.

또 최 목사와 단절하라는 아버지(박정희)와 주변(경호실 등)의 여러 차례에 걸친 교류 만류도 뿌리친 박 대통령의 '황소고집'과 최순실의 검은 속셈을 모르고 놀아난 박 대통령의 무능, 최순실의 권력을 업은 횡포를 묵인하고 방조해 빚은 자업자득이다. 검찰이 60년 헌정 사상 처음 박 대통령에게 '피의자' 낙인을 찍은 까닭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가 '명품 평화시위'의 새 역사로 국민에게 깨달음도 일깨웠다. 우리 핏속에는 평화를 사랑하고 좋은 것은 함께 나눠 하는 '선(善)한 공유(共有)' 정신의 공통 인자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지난 12일 100만에 이어 주말 200만 촛불 모임의 평화적 마무리를 통해서다. 세계는 놀랐지만 돌이켜보면 우리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미처 알지 못했을 따름이다.

위기나 어떤 계기로 모습을 드러내는 이런 '선한 공유' 정신의 뿌리는 깊고 오래다. 국조 단군의 홍익인간(弘益人間)이 출발점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함은 골고루 함께 살아가는 사회 지향을 말한다. 본래 소수 지배자와 다수 피지배자 모두 평등하다. 다수의 백성은 함께 살아가는 방편으로 소수에 통치를 잠시 맡겼을 따름이다.

그래서 중국(공자)이 한족(漢族)에게 10분의 1로 세금을 거두는 일이 가장 좋은 조세라고 자랑할 때, 동이족 선조는 보다 낮은 20분의 1세를 시행했다고 한다. 적은 세금 징수는 백성 부담을 그만큼 줄이고 고루 세금을 나눈다는 뜻이다. 우리 조상은 일찍부터 백성의 가장 큰 의무인 세금의 짐을 분담하는 '선한 공유' 정신을 드러냈다.

이는 통일신라에서도 이어졌다. 삼국 통일 전쟁에서 신라인들은 전쟁 없는 평화를 위한 '죽음의 선한 공유'로 당나라와 7년 전쟁까지 마다 않았고 마침내 삼국이 한 울타리가 됐다. 또 고유 신앙에다 외래 종교와 학문인 불교와 도교, 유학까지 포용했다. 유·불·도 삼교(三敎)가 어울려 공유하는 신라 특유의 풍류도(風流道)가 탄생했다.

선한 포용의 공유 정신은 고려에도 이어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나라 밖 민족을 받아들였다. 왕조별 외국인 귀화 성씨(歸化 姓氏)가 좋은 증거다. 고려의 귀화 성씨는 60여 개, 신라는 40여 개, 조선은 30여 개였다. 고려의 개방성과 이민족(異民族)을 수용하는 '선한 공유' 정신의 관통을 엿볼 수 있다.

조선에서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와 민본(民本)정책으로, 400년 경주 최부자의 상생 경영, 동학의 평등세상 구현으로 나타났다.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생명력을 유지하며 명맥을 잇는 두레와 품앗이 역시 우리 백성들 핏속에 흐르는 '선한 공유' 정신과 다름 아니다.

1980년대의 민주화도 백성이 주인이 되는 뭇 열망의 '선한 공유'로 일궈낸 작품이다. 짧은 산업화 역사 속에서 만든 경제적 결실과 민주화의 정치적 열매 수확은 세계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민주화 30년 만인 2016년, 지금 평화의 '선한 공유'로 명품 시위라는 새 역사를 쓰기에 이르렀다.

남은 일은 대통령의 화답이다. 백성들의 '선한 공유'로 쓴 새 역사에 걸맞게 촛불 민심을 받든, '질서 있는 퇴진'의 결단이다. 이는 뒷사람에 가르침이 되고 남음이 있다. 특히 통치자와 주변 사람들의 거울로 말이다.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