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무대 밖의 시간들

지난 주말, 서울을 다녀왔다. 몇 달 전 예매한 오페라 '맥베드'를 보기 위해서였다. 표를 예매할 당시만 해도 현재와 같은 국정 농단 사태가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지만, 계획되지 않은 예정 속에 절묘하게 현실이 오버랩되는 듯했다. 권력 추구는 오페라가 400년 이상 탐구해온 인간 동기의 핵심이라 했다. 특히 그런 탐욕 때문에 뒤틀린 인간의 모습을 너무나도 잘 담아낸 '맥베드'라니. 시공간을 초월하여 인간 세계에 반복된 테마, 그것이 극에서 그리고 현실에서 조응하고 있었다.

셰익스피어가 맥베드를 현혹하고 처참하게 짓밟는 주체로 설정한 세 명의 마녀를, 오페라 맥베드를 만든 베르디는 세 집단의 마녀 무리로 설정하였다. 이는 음악적인 표현을 위해서이기도 했겠지만, 한편으로는 관객들을 무대 위로 끌어들이는 하나의 장치로 보이기도 한다. 마녀였던 그들은 때론 궁정연회를 즐기는 귀족으로, 때론 성난 민중이 되어 연기한다. 주인공 몇 명을 제외하면 무대 위 조연 대부분이 일인 다역을 맡는다. 관객석에 앉아 있는 우리는 어느 순간, 악함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세 명의 마녀들, 그리고 이 모습에서 저 모습으로 쉽게 옮기어가는 군중의 모습 속에서 우리를 보게 된다.

그래서 오페라의 진짜 주인공은 그 다중인격체들이다. 오페라 맥베드가 이야기하는 권력이란, 이렇듯 구경꾼이 되어 현실에 무덤덤해져 가는 존재들, 그리고 쉽게 얼굴을 바꿀 수 있는 그 뻔뻔함에 기대어 자라나기 때문이다.

예술은 삶의 반영이 아니라,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무대 위의 시간은 연기자와 관객을 구분하여 행위하는 자와 보는 자로 나뉘지만, 실제 우리의 삶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모두가 무대 위에 있으면서 동시에 관객이 되어 서로를 '관람'한다. 무대 위에 있는 자는 자신의 무대를 볼 수 없듯이, 우리 또한 자신을 스스로 볼 수는 없다. 다른 배우의 연기를 통해, 자신을 겨우 비춰볼 뿐이다. 이러한 예술의 경험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물어보게 하고, 무대 밖, 진짜 무대에서의 삶을 반추하게끔 한다.

사실 오페라를 보러 가는 김에 하루 일찍 나섰더랬다. 전날 공연장 바로 앞 광화문 광장은 촛불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속에 나도 끼어 있었다. 하지만 공연 당일, 그곳은 전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8차로 도로가 되어 있었다. 꿋꿋하게 남아있는 세월호 천막광장만이 자리 한쪽을 지키고 있었다. 마치 일요일에 교회를 가는 것만으로 구원받은 것처럼 여기고 나머지 일상에서는 전혀 믿음의 행실이 없는 '선데이 크리스천'처럼, 우리는 광장 안에서만 서로를 통해 무언가를 확인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무거운 마음으로 기차를 타고 대구로 돌아왔다. 다시 시작된 일상 속에서 이 질문들은 나를 어디로 이끌까. 이 또한 질문이 되어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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