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주<酒>님

시국은 시끄럽지만 그래도 연말은 다가오고 술자리도 점점 많아지는 시기다. 우리 전통을 봐도 크고 작은 행사에 음주가무가 빠지지 않았고 특히 술은 공동체 화합이나 인간관계를 위해 꼭 필요한 요소였다. 삼국유사 등 옛 기록에 보면 신라시대에 술잔이 특정한 사람 앞에 오면 그 사람이 시를 읊거나 노래를 하며 곡수연을 즐긴 곳인 포석정이 유명하고, 1975년 동궁과 월지(안압지)에서 발굴된 14면 주령구에 술자리에서 사용된 듯한 재미있는 게임 관련 내용들이 적혀 있어, 그때나 지금이나 술자리 문화가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유명 개그맨에게 들은 술에 관한 조크가 생각난다. "술은 성인입니다. 그 주(酒)님은 춥고, 어둡고, 습한 냉장고에서 온몸에 땀을 흘리면서 묵언수행을 하시다가 말없이 머리를 따서 나를 위해 희생하십니다. 또 몸에 들어가서는 용기 없는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시집 장가도 보내주며, 보고 싶은 사람을 잠깐 불러도 줍니다. 마지막에는 몸에 들어가 있다가 필요 없을 때 나오면서 몸에 나쁜 것을 다 끌고 나옵니다. 이러니 어찌 酒님이라 하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기발하면서 공감이 가는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술도 너무 과하게 마시면 낭패를 볼 수 있다. 신라시대 한 사람의 취중 실언 때문에 두 번이나 전쟁을 치러야 했던 기록이 나온다. 석우로 장군 얘기다.

253년 첨해왕 시절 석우로가 왜국 사신을 접대하면서 술에 취해 "조만간 당신네 왕을 소금 굽는 종으로 만들고, 왕비는 밥 짓는 부엌데기로 만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왜왕이 이 말을 전해 듣고 크게 노해 신라로 쳐들어오니, 석우로가 왕께 아뢰기를 "제가 취중에 말을 조심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니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라고 말한 후 왜의 군영으로 가서 "지난번 말은 취중 농담인데, 어찌 전쟁까지 생각했겠는가?"라며 사과를 했다. 하지만 왜인들은 사과를 받아주지 않고 석우로를 불태워 죽여 버렸다.

이후 미추왕 시절 왜국 대신이 방문하였을 때 원한을 품고 있던 석우로의 부인이 왕에게 부탁해 왜의 대신을 접대하길 청한 후, 그가 취하자 마당에서 불태워 죽여 지난날 남편의 원수를 갚았다. 그 바람에 왜인들이 또 금성을 공격해 두 번째 전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얼마 전 교육부 고위 관료가 취중에 "민중은 개, 돼지처럼 먹고살게만 해 주면 된다"고 하여 분노를 산 일이 있고 취중에 한 말인데 진의가 왜곡되었다면서 언론사를 탓하는 일도 있었다.

취중 실언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되새겨주는 교훈이다. 입에서 나온 말은 화살 같아서 한번 떠나면 돌이킬 수 없다. "그놈의 술이 웬수다"면서 아무리 후회해 본들 소용없다. 올 연말에는 우리 모두 석우로처럼 술 때문에 낭패를 보는 일이 없는 차분한 모임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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