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의도 통신] 경북의 통 큰 양보

지난 2004년 당시 열린우리당 소속인 한 국회의원이 경주가 유치하려는 태권도공원 사업에 발목을 잡고 나섰다. 국책으로 추진되는 사업을 호남 쪽으로 돌리려는 속셈이었다.

당시 열린우리당이 거대 여당인데다 해당 의원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문제점을 인식한 매일신문은 '왜 대구경북 사업에 광주가 훼방 놓느냐'는 기사로 강하게 비판했다. 되돌아온 것은 언론중재위 제소와 명예훼손 혐의로 인한 검찰의 고소장이었다. 검찰 조사가 이뤄지기 직전 해당 의원이 '사실 관계에 오해가 있었다'며 화해를 요청하고 제소와 고소를 모두 취하해 일단락됐으나, 호남에 의해 지역 예산이 칼질 된 경우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최근에는 국민의당 전북지역 의원들이 탄소섬유 사업과 관련한 장비 구입 예산이 경북에 편중됐다며 예산 삭감을 주장하고 나섰다. 장비 구입 요구 부분 가운데 전북은 13종(154억8천만원), 경북은 11종(144억2천만원)을 요청했으나 전북 3종(22억원), 경북 9종(115억7천만원)만 반영돼 경북에 집중됐다는 게 요지이다.

하지만 '균형 예산'을 주장하는 이들의 주장은 오히려 '편파 예산'을 조장하는 우를 범했다. 전북 전주의 경우 지난 2001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한국탄소융합기술원에 관련 장비들이 보유돼 있어, 탄소 산업을 경북과 전북이 공동으로 추진하려면 경북의 기초 장비 보유가 시급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주 한국탄소융합기술원은 ▷CVD방식 다중벽탄소나노튜브 ▷아크방전식단일층탄소나노튜브합성장치 ▷항자력측정기 등 50여 종에 달하는 고가의 장비를 보유, 운영 중이다. 그 결과 최근까지 ▷EV용 세라믹 브레이크 디스크 개발 ▷탄소섬유 리사이클 공법을 활용한 자동차용 마찰재개발 ▷탄소복합소재를 이용한 EV초경량 ROOF 개발 등 괄목할 만한 연구성과를 이뤄냈다.

반면 경북의 경우 새로 시작하는 분야여서 관련 기자재가 전무한 상태이다. 이와 관련해 경북도 관계자는 "걸음마 단계인 산업 환경을 개선하자는 취지의 예산 배정을 걸고넘어지는 것은 다 큰 어른이 아이들 젖병 빼앗아 먹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정부 측 관계자도 "일단 경북 수준을 전북처럼 올려놓은 뒤 국내 탄소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공동 견인하려는 게 정부 목표"라며 "한정된 예산을 놓고 선택과 집중은 불가피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북은 최근 전북의 주장을 받아들여 공동 예산 확보에 다시 한번 협조하기로 했다. 합리적 논리와 정부의 호응도 있는 유리한 상황에서 경북이 다시 한 번 전북 손을 잡아 준 데 대해 '통 큰 양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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