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의 눈'은 대구에서 사진 책을 펴내는 작은 출판사다. 텍스트보다는 사진 중심의 책을 펴낸다. 디자인 저술가인 전가경 씨와 북디자이너 정재완 교수(영남대 시각디자인과)가 공동 대표다.
두 사람 모두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사진과 텍스트 그리고 디자인 간의 관계를 질문하는 책을 출간하고 있다.
2013년 첫 책 '사이에서'(강태영) 발행을 시작으로, '밝은 그늘'(손승현) '사과여행'(신현림) '마생'(글 마생'사진 올리비에 르그랑) '빈방에 서다'(김지연) '아파트 글자'(강예린'윤민구'전가경'정재완)를 올해 9월까지 발행했다. 앞으로 '자갈마당'을 주제로 한 전시회를 비롯해 '자영업자'를 주제로 한 책을 출판할 예정이다.
◆'사월의 눈' 다중적 의미 담아
출판사 이름 '사월의 눈'은 말 그대로 '4월에 내리는 눈(雪)'을 의미하는 동시에 역사적 사건이 많았던 '4월을 지켜보는 눈(目)'을 의미한다. 그런가 하면 눈 내리는 4월의 분위기, 좀 암울하기도 하고, 환상적이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느낌도 담고 있다. 출판사 로고는 격자로 난 창밖으로 내리는 한 송이 눈을 의미한다.
출판사 '사월의 눈'은 대형서점을 주로 찾는 독자들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출판등록(2012년 7월)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형 서점 매대에 책을 내놓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월의 눈' 이 발행하는 책은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우편으로 받거나 몇몇 동네 책방이나 디자이너 사진가, 건축가들이 찾는 전문 서점에서만 구할 수 있다.
'더북소사이어티'(the book society) '유어마인드'(your mind) '땡스북스'(thanks books) '스토리지북앤필름'(storage book & film) '비엥북스'(bien books) '알라딘 인터넷서점'(aladin.co.kr) '더 폴락'(the pollack'대구 북성로) '책방 이층'(2ndf_bookshop'대구역 부근) '차방 책방'(coffee xchaeg'대구) '시인보호구역'(대구 칠성동 홈플러스 부근) '책과 생활'(Chaek & Saenghwal'광주) 등이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을 빼면 일반 독자들에게는 모두 생경하고 작은 책방들이다.
◆"이래 봬도 국내 5대(大) 출판사"
전가경'정재완 대표의 원래 직업은 북 디자이너였다. 그러나 '출판사에서 의뢰받은 책'이 아닌 '자신들의 작품'을 내고 싶어 출판사를 차렸다. 까닭에 각 책의 지은이와 사진작가들에게는 그들의 책이겠지만 전가경'정재완 대표에게는 '자신들의 책'이다.
책이 많이 팔리지 않는 세상이다. 더욱이 사진 중심의 책이다. '사월의 눈'출판사는 한 번에 주로 300~500부 정도를 찍는다. 그럼에도 출판사 '사월의 눈'은 사진 책을 정식 출판하고 유통하는 출판사 중에서는 매출 순위 국내 5위다. 책이 잘 팔려서가 아니라, 사진 책만 출판하는 출판사가 워낙 드물기 때문이다.
'사월의 눈'은 1년 2권씩 출판을 목표로 한다. 대표 두 사람이 다른 일로 번 돈으로 책을 내기도 하고, 책을 내고자 하는 작가와 공동부담으로 책을 내기도 한다.
◆"오직 책만 생각하니 즐겁다"
잘 팔리지도 않는 책을 왜 펴낼까?
전가경'정재완 대표는 "출판과 책은 다르다"고 말한다. 출판의 입장에서 보면 책은 교환가치의 소재다. 안 팔리면 출판사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수많은 출판사들이 이른바 '팔리는 책'만 펴내는 경향이 있다. 자연스레 책의 다양성이 훼손된다.
세상에는 수많은 주제와 소재, 수많은 경향의 작가와 독자가 존재하지만 책은 그처럼 다양하지 못하다. 팔릴 만한 책만 펴내기 때문이다.
대형 출판사들은 그래서, '청춘' '사랑' '자녀' '입시' '배려' '미움' 등 세상의 이슈를 따라 책을 펴낸다. 결과적으로 돈을 벌기는 하지만, 세상에 우리가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것이 그것들뿐인가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두 사람은 "오직 책만 생각하면 즐겁다. 출판을 이익추구 수단으로, 사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책 그 자체를 위해, 소수 독자를 위해, 음지의 작가를 위해 책을 만들고 순환하자는 것이 우리 생각이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일로 벌어들인 수익을 기꺼이 책 출판에 투자한다.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 추구
정 대표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의 목적성에 큰 무게를 둔다. 교훈이나 지식, 정보를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하면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책을 만들고, 만지고, 보면서 기분이 좋아진다면 혹은 다른 아련한 생각이 든다면 그것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금전적 보상, 지식적 보상이 없더라도 얼마든지 존재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사월의 눈'출판사는 이른바 '다품종 소량 생산'을 목표로 한다. 농사로 따지면 '텃밭 농사'다. 금전적 이익을 생각한다면, '단품종 대량 생산', 즉 1천㎡(약 300평) 밭에 배추만 잔뜩 심었을 때 재배도 편하고, 유통도 편하고, 판매도 편하고, 수익도 많다.
그러나 '사월의 눈'은 100㎡ 작은 밭에 배추, 상추, 파, 무, 시금치, 감자, 가지, 토마토, 들깨, 참깨, 고추, 당근, 호박, 근대, 쪽파를 골고루 심는다. 생리가 다른 이 다양한 채소를 재배하자면 품이 많이 들고, 재배해봐야 수익도 나지 않지만, 그렇게 한다. 세상에는 배추 말고도 다양한 채소를 원하는 독자와 작가가 있기 때문이다.
◆'사월의 눈'이 출판한 책들
▷사이에서=이 책은 '사월의 눈'의 첫 작품이다. 사월의 눈이 앞으로 진행해 나갈 작가 발굴 프로젝트의 첫 작업으로 기획했다. 사진가 강태영이 지난 몇 년간 여행하며 찍은 400여 장에 가까운 사진 중 73장을 선별해 실었다.
▷밝은 그늘=A4 판형에 가까운 이 사진 책에는 사진가 손승현이 2003년부터 2012년까지 북미, 캐나다 그리고 몽골에서 찍은 사진 57장이 수록되어 있다. 아트지에 인쇄된 총 31장의 컬러 사진들은 몽골과 북미 원주민들의 현재를 기록하고 전달한다. 나머지 36장의 흑백 사진들이 컬러 사진들 사이를 비집고 다닌다.
▷사과여행=사진가 신현림이 6년간 세계 각국을 돌며 찍은 이 사진들은 평범한 일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신에 대한 경외감과 친밀감을 담으려는 작가의 의도가 화폭에 진하게 배어 있다.
▷마생=1964년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 아트디렉터인 마생은 외젠 이오네스코의 희곡 '대머리 여가수'를 책으로 재해석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책은 마생이 1964년 이후 '표현적 타이포그래피'란 이름으로 제작하고 디자인한 책들을 모아 설명한 것이다. 마생 타이포그래피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는 마생 연구서다.
▷빈방에 서다=사진가 김지연의 아홉 번째 사진 책이다. 그의 다큐멘터리 사진들은 한국 근대화의 축과 함께 한다. 근대화라는 시공간의 축과 함께 생성되고 소멸되는 공간과 인물들이 기록의 대상이다. 김지연이 담아낸 대상들은 한국의 '조국 근대화'가 낳은 것임과 동시에 버린 것들이다.
▷아파트 글자=거리의 간판과 더불어 아파트 외벽에 그려진 글자를 관찰해 만든 책이다. 작명과 표현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 지금, 1980년대에 그려진 글자 레터링은 어디서 볼 수 있을까.
공동 지은이 정재완은 "잡지 제호나 광고 지면에 무수히 많던 글자 레터링은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하지만 거대한 아파트 벽면 글자 레터링은 아직 숨지 않았거나 숨지 못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 글자 컬렉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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