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이문열 작가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다. 이 소설은 자유당 시절 초등학교 교실을 배경으로 엄석대라는 부당한 권력이 무너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이 고전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부당한 권력이 어떻게 해서 성립되고, 유지되는지에 대해 우의(알레고리)적 수법으로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교실은 엄석대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전학생인 한병태의 눈에는 부조리가 많지만, 엄석대 체제는 효율적이었고 좋은 성과를 내고 있었기 때문에 담임 선생님은 한병태의 의견을 무시한다. 한병태가 학급에 적응해서 살기 위해서는 엄석대 체제를 인정하고, 부조리에 가담하여 안락함을 얻는 길과 부조리에 대항해 외롭고 힘든 싸움을 해야 하는 길이 있다. 한병태는 결국 앞의 길을 택한다. 앞의 길을 택함으로써 엄석대와 대립할 때는 얻을 수 없었던 수많은 혜택을 받게 된다. 한병태는 엄석대의 체제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데 공범이 되어간다.
그런데 한병태가 엄석대의 체제에 가담함으로써 얻게 되는 혜택들은 엄석대로부터 받은 것들이 아니라 엄석대에게 대항하는 동안 빼앗겼던 것들이다. 여기에서 부당한 권력이 어떻게 발생하고 유지될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엄석대가 반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들보다 힘이 더 셌기 때문일 것이다. 이 힘의 차이는 두 명만 힘을 모아도 극복할 수 있는 정도였을 것이다.(나중에 아이들은 두세 명이 힘을 합쳐 싸움으로써 엄석대를 쉽게 이겼다.) 그렇지만 그 미세한 힘의 차이를 이용해 교활한 모사꾼과 무식한 행동대장들을 모아 체제가 갖추어지면 그 힘은 몇 명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진다. 권력 체제가 갖추어지면 전체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다른 아이들로부터 빼앗기 시작한다. 빼앗은 것들은 체제 유지의 공범들에게 대부분 돌아가지만, 체육대회나 아이들끼리의 회식 같은 것으로 빼앗긴 아이들에게 조금 나눠준다. 부당한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핵심은 바로 사람들이 단결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엄석대가 부당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새로 온 담임 선생이 엄석대를 끌어내리기 전까지 침묵하고 있었다. 개인의 힘은 약하기 그지없고, 권력에 이의 제기를 한 사람들은 어떤 보복을 당했는지 보아 왔기 때문이다. 만약 아이들이 용기를 내 엄석대파와 대립했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은 처음에는 대동(大同)하여 단결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이(小異)가 부각되고 권력을 가진 자들의 공작으로 흐트러지게 된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는 어느 국회의원의 말은 어떻게든 시간을 끌면 권력을 가진 자가 이긴다고 생각하는 권력의 본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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