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의원과 언론이 제작한 탄핵 관련 정치인들의 성향 분석표가 '살생부'처럼 돌아다니자 대구경북 의원들도 적지 않은 부담을 갖는 눈치다. 또 다른 의원들은 전략적 선택을 위해서라도 탄핵 처리일인 9일까지 찬반 입장을 섣불리 드러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매일신문이 5일 조사한 대구경북 지역구 의원들의 탄핵 찬반 전수조사에서 '유보' 입장이 가장 많았던 이유는 역시 촛불 민심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국회의원 전원의 탄핵 찬반 성향을 공개하면서 일부 의원들은 무차별 전화폭격을 당했다고 했다.
이완영 의원은 "표 의원이 자의적으로 표시한 본인의 성향 때문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와 한때는 휴대폰이 마비될 지경이었다"며 "어쩌다 전화를 받아 보면 다짜고짜 '개새끼' '소새끼' 하면서 막말을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지금까지 어떤 언론과도 탄핵과 관련한 소신을 한 번도 밝힌 적이 없다"며 "어디서 어떤 정보를 듣고 나의 성향을 임의적으로 파악했는지 진위 파악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진위 파악을 위해 이 의원은 표 의원을 비롯한 일부 언론을 향해 금명간 '내용증명'을 보낼 계획이다.
최교일 의원은 "지금 (탄핵에 대해) 찬반을 밝힌다고 할 경우 오만 군데서 전화가 폭주할 것으로 보인다"며 "그렇게 되면 실제 표결에서 오히려 행동에 제약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당장 언론에 공개하는 것보다 의원들 스스로 전략을 잘 세워 놓는 게 급선무"라고 밝혔다.
'유보' 입장을 밝힌 김상훈 의원은 "그동안 각 언론사의 탄핵 전수조사 때문에 너무 시달렸다"며 피로감을 보였고, 역시 '유보'인 김정재 의원도 '찬반은 밝힐 수 없으나 표결에는 무조건 참석' 입장을 나타냈다.
일부 의원들은 카카오톡 '강제 소환' 공격에 시달리기도 했다. 카카오톡 그룹 채팅에 강제로 초대한 뒤 퇴장하면 또다시 초대하는 방식이다. 김상훈 의원실은 "의원님 폰을 가져와 모르는 사람들이 그룹 채팅에 초대하면 퇴장하고, 초대한 사람을 차단하는 게 요즘 내 주요 업무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의원들은 탄핵 찬반 문자메시지가 쏟아져 지인들이 보낸 문자 확인도 아예 포기했다고 말한다. 유승민 의원은 "문자를 확인하고 있으면 다른 문자가 차곡차곡 쌓여 먼저 온 문자를 볼 틈이 없다"며 문자함에 메시지가 4천 개 넘게 쌓였다고 했다.
이날 내내 전화 연결이 안 된 박명재 의원의 경우 공식 일정이 없는 게 확인됐음에도 취재진과 연락이 닿질 않았다. "표 의원의 명단 공개 이후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는 게 보좌진의 설명이다.
일부 의원들은 여론 추이를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윤재옥, 곽대훈, 정태옥 의원 등은 "여론과 청와대, 정치권 상황을 조금 더 면밀히 지켜본 뒤 결정하겠다"고 했고, 김광림 의원은 "지금까지 탄핵과 관련해서 어떤 입장도 표명하지 않았다"고 신중했다.
장석춘 의원의 경우 지역구 여론 수렴 기간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역 내 여론이 너무 갈린다. 지금은 찬반을 결정할 때가 아니라 의견을 더 수렴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최근 일부 언론에 탄핵 찬성 입장을 보이기도 했던 이철우 의원은 반대 입장으로 선회하면서 당의 존립을 위한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탄핵의 가'부결이 어떤 식으로 결정 나더라도 새누리당 상황이 더욱 어렵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탄핵이 부결될 경우 촛불 민심의 분노를 모두 새누리당이 맞게 돼 일부 야당 의원들이 오히려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며 "반대로 가결되더라도 이후 야권은 새누리당을 공범으로 몰아 당 해체를 요구할 수 있고, 식물이 된 대통령 하야도 더 강력하게 촉구할 수 있게 돼 보수진영은 더욱 난처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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