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동네 으뜸 의사] 이상일 문경중앙병원 이사장

"환자의 입장 최우선, 동네 의사가 가져야 할 덕목"

"제가 끈기가 없어요. 성격도 원래 좀 정서 불안이에요. 하하하." 이상일(55) 서일의료재단 문경중앙병원 이사장이 유쾌하게 웃었다. "뭘 오래 못 기다려요. 무슨 일을 하고 있어도 머릿속에서는 생각이 이미 저만치 가 있으니까."

문경 토박이인 이 이사장은 지난 1999년 개원한 이후 줄곧 고향을 지켜왔다. 고향 사람들 덕분에 동네 의원은 110병상을 갖춘 2차 병원으로 성장했고, 그는 지역민들에게 받은 사랑을 여러 방식으로 되돌려주고 있다. 지난해 문경에서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한 게 대표적이다.

그는 스스로를 '긍정의 아이콘'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저랑 밥을 먹거나 술을 한잔하고 나면 꼭 좋은 일이 생긴대요. 그래서 중요한 공사 입찰을 앞둔 후배들은 제게 전화를 해서 만나자고 해요. 그래도 로또는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하하."

◆한순간에 바뀐 인생길

이 이사장에게 '의사'는 천직이 아니다. 그가 꿈꾸던 미래는 '우리나라 최고의 핵물리학자'였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가 목표였는데 진로가 바뀐 건 고3 수험생 때였다. 집에 들어와 가정교사를 하면서 아들의 공부를 봐달라는 부잣집 친구 아버지의 제안은 인생길을 돌려놨다.

원치 않던 가정교사를 하게 된 건 가정 형편 탓이 컸다. 집안의 장손이었던 그는 농사를 지으며 가축을 기르고 부동산중개업도 하던 아버지의 상황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 친구는 학교에서 가장 '농땡이'였어요. 같이 어울리면서 4, 5개월 동안 책을 전혀 못 봤죠. 나중에는 같이 놀기만 했어요. 매일 동성로 나가서 짜장면집 돌아다니고. 하하."

자기 이름을 한자(漢字)로 쓰지도 못하던 친구는 전문대라도 진학했다. 하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받고 의과대에 진학한 그는 한동안 방황했다. 부잣집 친구로부터 느낀 상대적 빈곤감과 열등의식이 그를 강하게 짓눌렀다. "친구가 부러웠어요. 나는 왜 이런 넉넉함을 누리지 못할까. 열등의식을 억누르려고 학교 대표를 2년 하고 남 앞에 나서면서 극복하려고 애를 썼어요."

사람들 간의 관계를 중요시하던 아버지도 그의 삶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의과대 진학도, 고향에서 개원한 것도 모두 아버지의 뜻이었다. "아버지는 정말 부지런하셨고. 남에게 절대로 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하셨어요. 제가 초등학생 때부터 돌아가시는 날까지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제 자랑을 하셨죠." 아들이 개원한 병원에 매일 새벽 찾아와 즐거워하시던 아버지는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5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은 동네 의원을 8년 만에 5개 진료과를 갖춘 110병상 규모의 2차 병원으로 키웠다.

급한 성격인 그는 '일단 일을 저지르고 보는 편'이라고 했다. "뭔가 결정을 한 뒤에 아내와 상의를 해요. 병원 건물을 사두고 아내에게 병원을 옮기면 어떻겠냐고 묻는 식이죠. 지난 2012년 문경시장 보궐선거 새누리당 경선에 나갔을 때도 기자회견을 하고 아내에게 얘기를 했어요. 아내는 이럴 거면 얘기하지 말라고 하죠. 후후."

◆"난 동네 의사에 최적인 의사"

한참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진료실 문이 벌컥 열렸다. "링거 맞고 싶은데? 내일 오나? 약을 닷새치 처방했나?" 하고 싶은 말만 쏟아낸 환자가 쌩하고 나가버린다. "제가 이런 스타일이에요. 동네 의사에 최적인 의사죠. 사실 1, 2분 투자한다고 해서 내가 손해 볼 것도 없고, 그 사람은 내 덕분에 해결되니까 기분이 좋죠."

외과 전문의인 그는 동네 의원이면서도 응급실을 운영했다. "처음 1년 6개월 동안은 저 혼자 24시간 근무를 했어요. 오전 8시 30분에 진료를 시작해서 오후 6시가 되면 혼자 당직 서고. 야구로 치면 혼자 던지고 받고 치고, 감독까지 다 한 거지. 처음엔 하루에 10명 정도이던 환자가 나중에는 300명이 넘었어요."

그는 "누가 부탁을 하면 불법이 아니면 거의 다 들어준다"고 했다. 그가 제1원칙으로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라'를 내세우는 이유다. "환자에게 맞는 언어로, 환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이 들어주고 상대방을 배려합니다. 사실 병이라는 게 심리적인 요인이 많거든요."

이 이사장은 개원 이후부터 꾸준히 사회 환원에 힘써왔다. 각종 사회복지시설과 장애인단체, 아동'청소년들을 위한 후원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그가 지금까지 내놓은 기부금도 수억원이 훌쩍 넘는다.

그가 요즘 가장 관심을 갖는 사회적 활동 분야는 청소년이다. 그는 올해 경북공동모금회에 2천만원을 지정기탁해 청소년 봉사단 11명에게 라오스 해외봉사를 지원했다. 드림스타트 아동들을 위한 건강검진과 청소년 문신 제거 지원 등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청소년기는 한창 변화하는 시기잖아요. 16, 17세 때는 교육의 효과가 높고 인생이 완전히 바뀔 수 있는 시기이니까요."

"의사로 사는 것보다 인간적으로 사는 삶이 훨씬 풍요롭다"는 그에게 남은 숙제는 병원 확장과 사회운동을 하는 소모임 활동이다. "저는 한 사회의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돌아가고, 수준이 높아진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여기에 이바지하기 위한 경제적 도움이나 사회 시스템의 변화에 일조하고 싶습니다."

♣이상일 이사장

1961년 문경 출생/성광고/영남대 의과대 졸업/영남대 외과 전문의/의료법인 서일의료재단 문경중앙병원 이사장/문경시체육회 부회장/문경문화원 부원장/대구지검 상주지청 범죄예방위원/국민건강보험공단 장기요양 심의위원/문경시 지역사회개발위원/전 문경시 선거관리위원/전 문경소방서 자문위원/전 법무부 조정위원/보건복지부장관 표창'행정안전부 대통령 표창 봉사 부문 등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