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世事萬語] 비박의 선택

새누리당 비박계가 지난 주말 230여만 명의 촛불 시위에 놀라 대통령 탄핵 표결에 참여하겠으며 이는 찬성표를 던지겠다는 의미라고 입장을 바꾸었다. 국회 합의에 따라 퇴진하겠다는 대통령의 3차 담화 이후 '내년 4월 대통령 퇴진, 6월 대선' 당론에 동조했다가 국민의 분노가 거세지자 급선회했다. 비박계가 대통령 탄핵의 키를 쥔 듯하나 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리 유지의 꼼수를 부리는 바람에 '질서 있는 퇴진'은 물 건너갔고 국회의 선택은 탄핵 절차를 밟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친박, 비박할 것 없이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을 함께 나누어야 하는 처지이다. 대통령의 잘못이 드러났는데도 감싸는 데 급급했던 친박 세력들은 정치판에서 퇴출당해야 마땅하다. 자질이 부족한 인물을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이후에는 청와대의 눈치를 살폈을 뿐 견제한 적이 없다. 새누리당이 '내시환관당'이라고 조롱받는 것은 전적으로 친박 탓이다. 비박이라고 해서 면죄부를 받을 순 없다. 비박계 역시 친박계와 주로 당내 주도권 다툼을 벌였으며 당-청 관계를 바로 세우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비주류라고 해서 상황을 방치한 무책임이 지워지지 않는다.

비박의 핵심인 김무성 전 대표는 얼마 전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면서 개헌을 언급했고 합리적 보수의 길을 가겠다고 했다. 대선 불출마 선언은 그의 미약한 지지도를 고려하면 하나 마나 한 얘기였고 개헌 운운은 좁은 정치적 입지를 넓혀 보려는 의도가 엿보여 불순하게 느껴진다. '합리적 보수'를 지향하겠다는 말도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점을 돌아보아야 한다. 김 전 대표는 지금까지 종종 야권을 종북세력으로 몰아붙였고 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등 수구보수적인 행보를 보였다. 과거의 발언에 대한 반성 없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 정치 이력을 세탁하려는 태도는 옳지 않으며 받아들여질 수도 없다.

비박계 일부 의원들은 이명박정부 시절의 친이계 족보에 올랐던 인물들이다. 이명박정부의 무지막지한 4대강 개발과 자원외교 비리 등 실정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친이, 친박, 비박의 새누리당 패거리 정치가 이명박-박근혜정부를 거치면서 많은 폐단을 차곡차곡 쌓았고 곪을 대로 곪아 전대미문의 국정 농단 사태가 터졌다. 새누리당은 해체되어야 한다며 준열하게 꾸짖는, 국민의 호통을 준엄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 엄중한 시국에서도 통렬한 자기반성 없이 정치적 진로 따위나 모색한다면 가느다란 정치 생명줄마저 가차없이 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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