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아베와 진주만

독일의 과거사 청산 노력은 일본과 늘 대비된다. 독일의 노력은 내부에서 시작됐다. 국민 스스로 자기반성을 하고 노력했다. 물론 이는 지도자들이 이끌었다.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이 극심하던 전후 초대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는 서구를 택했다. 왕따이던 독일이 다시 유럽의 일원이 되는 초석을 깔았던 셈이다. 정권을 이어받은 빌리 브란트는 이를 바탕으로 동유럽에도 눈을 돌릴 여유를 얻었다. 과거 나치 정권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인근 피해 국가에 끊임없이 화해와 용서를 구하고 다녔다. 1970년 12월 가장 극심한 나치 피해를 입었던 폴란드를 찾은 그는 2차 대전 시기 희생된 유태인을 기리는 바르샤바의 위령탑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추운 겨울날 위령탑 앞 콘크리트 바닥은 차가웠을 것이다. 브란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한참을 묵념했다.

총리로서 너무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인간이 말로써 표현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를 본 피해 국민들은 비로소 사죄의 진정성을 인정했다. 이를 두고 세계의 언론은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고 평가했다.

독일과 앙숙이던 프랑스는 이제 유럽에서 독일과 가장 친한 나라가 됐다. 더 이상 독일에 대해 아픈 과거를 들먹이는 프랑스인은 없다. 독일은 사죄했고 과거는 청산됐다.

일본 아베 총리가 26'27일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방문한다는 소식이다. 진주만은 1941년 일제가 공습하며 소위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던 진앙이다. 진주만 공습 75년 만에 이뤄지는 전범국 총리의 첫 방문을 두고 미국의 언론은 "미'일 간 화해를 보여주는 상징적 방문"이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의 노림수는 다른 듯하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2차 대전을 일으킨 데 대해) 사죄를 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냥 "전쟁 희생자의 위령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진주만을 찾기는 하지만 '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한 사죄'를 위한 방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전쟁에 대한 사죄는 않으면서 '사실상 사죄'를 했다는 피해자 코스프레가 읽히는 대목이다.

독일과 일본은 너무 다르다. 자기반성을 모르는 국민이 다르고 지도자가 다르다. 그러니 아베가 전쟁 피해국을 찾아 무릎 꿇기를 기대하는 것은 허망한 노릇이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라도 극일(克日)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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