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속풀이 해장국 '대구탕'

술자리 잦은 연말 쓰린 속 달래는 끝판왕

흉측한 입, 부리부리한 눈, 얼룩덜룩한 무늬까지. 겉으로 봐서 대구(大口)는 미식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한때 풍어기에는 사료용으로 야적(野積) 신세를 지기도 했다고 하는데 이 못난이 생선이 어느 때부터 식탁으로 '화려한 귀환'을 하고 있다. 바로 술꾼들의 속풀이 해장국으로 인기를 끌면서부터다.

해장국으로서 대구의 효용은 풍부한 비타민과 교질(colloid), 타우린 성분 덕이다. '동의보감'에서도 '고기의 성질이 평하고 독이 없어 기운을 보(補)하는데 특히 내장, 기름의 맛이 더욱 좋다'고 나와 있다.

'눈 본 대구, 비 본 청어' 속담에서 보듯 대구는 겨울철에 가장 맛있고 영양가도 높다. 진해만에서 부화한 대구 새끼들이 북태평양 북부 베링해까지 갔다가 산란을 위해 지금 동'남해안으로 몰려들고 있다.

대구는 '머리에서 꼬리까지 버리는 게 없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조리에 응용되고 있다. 매운탕'맑은탕요리, 찜·뽈찜이 가장 선호도가 높지만 소금에 절여 훈제를 하기도 하고 산지에서는 회로 먹기도 한다. 알, 아가미, 창자를 이용한 젓갈이나 대구포, 튀김도 인기가 높다.

지역에서 대구요릿집의 출현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5년을 전후해서 봉덕동의 '청학식당', 경상감영공원 근처의 '유경식당', 도시철도 3호선 북구청역 근처의 '추가네대구뽈찜'이 문을 열었다. 굳이 원조를 따지자면 외항 선원 출신 이원형(71) 씨가 1985년 문을 연 청학식당이 맏형 격. 호남의 손맛을 내세운 유경식당과, 한 번 먹어본 음식은 그대로 베껴낸다는 도오복(71) 씨의 '추가네대구뽈찜'이 지역의 주당들을 삼분하며 전통을 이어갔다.

이제 본격 송년회 시즌을 맞았다. 송년회의 끝은 대리운전이 아니고 다음 날 먹는 해장국이라고 한다. 밤새 달린 술꾼들이 속풀이를 위해 대구탕 집을 드나들 때다. 얼큰한 볼때기 탕이나 뽀얀 지리 국물이 유혹하더라도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다. 해장은 속풀이로 그쳐야지 해장술판으로 연결해서는 안 된다는 것.

◆영남대병원 근처 '청학식당'

#입맛 당기는 얼큰 매콤한 국물'찜

주인 이원형(71) 씨의 전직은 외항 선원. 대구요리와의 인연도 그때 맺어졌다. 청정 알래스카에서 보았던 싱싱한 생선의 추억이 대구탕집 창업으로 이어진 것. 초기에 장사가 주춤할 땐 메뉴 전환 유혹도 느꼈지만 30년 넘게 대구 요리 한길만 걸어왔다. 이곳에서는 대구탕과 뽈찜만 하는데 얼큰하고 매콤한 국물과 찜맛으로 승부를 한다. 모든 요리의 재료는 알래스카산. 새우만 먹어 육질이 쫀득하고 몸집도 모두 대형급. 냉동을 취급하는 덕에 1년 내내 알과 곤을 손님 식탁에 올릴 수 있다. 청학식당은 연중 7, 8월은 가게 문을 닫는 것으로 유명하다. 혹서기엔 만사 제치고 가족과 함께 장기 여행을 떠난다. 두 달 공백이 클 것 같지만 9월이 되면 단골들이 다시 찾아오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얼큰한 탕, 찜에 알과 곤을 넉넉히 먹고 싶다면 이 집이 최고의 대안. 오후 3시에 가게 문을 닫는다.

▷대표메뉴: 대구탕 8천원, 뽈찜 2만5천~3만원

▷주소: 대구 남구 봉덕로1길 52-1

▷전화번호: 053)474-2807

◆경상감영공원 옆 '유경식당'

#생대구·무·소금만 쓴 깔끔한 국물

호남의 전통 손맛을 대구에 전파한 이금업(70) 씨가 경상감영공원 근처에 문을 연 집이다. 한창 장사가 잘될 때는 다락방 계단에서 손님들이 식사를 했을 정도. 처음부터 대구 요리가 대박 아이템은 아니었다. 가족, 직원들이 먹는 식탁에 단골손님이 앉았다가 '이거, 기가 막히네' 했던 것이 고정식단이 됐고 입소문이 나면서 히트 메뉴가 되었다. 대구탕의 창시자 격인 이 씨는 고향(전남 고흥)으로 낙향을 하고 지금은 아들 명재연(48) 씨가 어머니의 손맛을 이어가고 있다. 유경식당 대구요리의 특징은 생대구를 쓴다는 것. 주로 속초나 동해에서 공수해오고 있다. 명 씨는 "생대구와 냉동대구는 국물, 식감, 맛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유경만의 독특한 조리법도 재미있다. 대구 요리는 육수를 일절 쓰지 않고 오직 무와 소금, 생대구로만 맛을 낸다. 맑은탕(지리)만 단일메뉴로 하고 있다.

▷대표메뉴: 대구탕 2만원

▷주소: 대구시 중구 경상감영길 101

▷전화번호: 053)252-5098

◆북구청역 근처 '추가네대구뽈찜'

#건조-동결-숙성 거친 최상의 육질

도오복(71) 씨가 식당 문을 열었을 때 첫 메뉴는 대구탕이었다. 탕 하나만으론 한계를 느껴 뽈찜 개발에 나섰다. 대구 몇 상자를 버려가며 실험을 거듭했다. '이만하면 됐다' 싶어 단골 몇 분을 모시고 시식회를 했는데 그 자리서 소주 1박스가 비워졌고 다음 날부터 뽈찜 손님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메뉴를 개발하며 점포를 일궜던 도 씨는 이제 2선으로 물러나고 아들 추동식(47) 씨가 대를 이어가고 있다. 이 집의 대구는 알래스카산을 쓴다. 가게 안에 냉동창고를 만들어놓고 시세 좋을 때 대량으로 구매한다. 보통 냉동생선은 육질이 떨어지는데 이곳에서는 건조-동결-숙성을 거치며 관리를 하는 덕에 최상의 상태로 육질을 유지하고 있다. 고기가 잘 퍼지지 않고 쫄깃해 웬만한 마니아들도 생대구로 착각할 정도. 양념이 잘 밴 뽈찜은 전국 어느 맛집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표메뉴: 대구뽈찜 2만원, 뽈탕 6천원

▷주소: 대구 서구 원대로 69번지

▷전화번호: 053)358-8409

◆들안길 '속초식당'

#넉넉한 곤'비법 육수로 칼칼한 맛

식도락가 이중희(49) 씨가 대구의 최고 속풀이 집을 구호로 내세우며 문을 연 곳. 이 식당을 열기 전 이 씨는 마니아들이 알아주는 유명한 짬뽕집을 운영했다. 들안길 TBC 건너편에 자리 잡은 지 2년여 만에 지역 술꾼들의 안식처로 자리 잡았다. 어르신들이나 주당들이 주머니 부담 없이 해장할 수 있도록 탕, 지리, 가격을 8천원으로 낮추었다. 재료는 알래스카산 대구를 엄선해서 쓴다. 지리나 탕 요리에는 육수를 따로 뽑아 쓰는데 국물에는 다시마, 멸치, 각종 야채 외 특수 비방이 포함된다. 이 육수가 칼칼하고 시원한 속초식당 맛의 비밀인 셈이다. 모든 요리에는 곤이 넉넉하게 들어간다. 마니아들의 공통된 반응은 "시원하다"라고. 매콤달콤한 맛이 나는 대구뽈찜도 인기요리 중 하나. 찜, 탕의 모든 요리에는 매운맛, 칼칼한 맛 등 3종의 고춧가루 양념이 뿌려진다.

▷대표메뉴: 대구탕, 지리 8천원, 대구뽈찜 2만5천~3만5천원

▷주소: 대구 수성구 동대구로 18

▷전화번호: 053)767-8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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