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송기 대구 능인고 교사가 '민 선생의 우리말 이야기-자장면이 아니고 짜장면이다'(학이사)를 펴냈다. 우리말 이야기를 하면서 왜 하필 '자장면이 아니고 짜장면이다'는 제목을 붙였을까.
여기에 그가 생각하는 바르고 고운 우리말의 정의가 들어 있다. 민 교사가 생각하는 바르고 고운 우리말은 '상황에 적절한 말,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말'이다.
그는 평소 사람들이 어떤 말을 더 많이 사용하고, 어떤 말이 인간관계를 더 원활하게 만드는지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에 따르면 특정인 혹은 특정 국민이 어떤 말을 많이 사용하느냐를 보면 개인의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집단의 사고방식도 추측할 수 있다고 한다. 인간사가 말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고, 말을 들여다보면 삶을 방식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널리 쓰이는 말에는 생동감이 넘친다
민 교사는 '사라진 말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말'이라고 정의한다. 사람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은 그 시대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는 의미다. 세상이 변하면서 기존의 말로 변화를 담아 낼 수 없으면 선택을 받기 어려워진다. 가령 '축음기'라고 하면 에디슨이 만든 초창기 기계를 연상하게 되는데, 이 말로 요즘 나오는 세련된 디지털 기기를 지칭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같은 찻집이지만, 다방과 찻집, 커피숍은 느낌이 다르다. 가게의 위치, 종업원의 나이, 손님들, 흘러나오는 노래, 심지어 실내로 들어오는 햇빛의 두께와 인테리어까지 다르게 연상되고, 실제로도 다르다. 이처럼 널리 쓰이고 있는 말에는 '생동감'이 있고, 모국어 화자라면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그 의미를 알거나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돼지족발'과 '돼지족'은 다른 말
국어학자나 표준어에 깐깐한 사람들은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어반복이 심하다'고 지적하면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가령 고목나무는 '고목'(古木)으로 써야 하고, 돼지족발은 '돼지발' 혹은 '돼지족', 담장(墻)은 '담'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국어 전문가인 민 교사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는 "반복을 없애는 것이 반복이 있는 말보다 훨씬 어색하게 느껴지고, 의미에도 다소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현대인들이 한자 뜻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고목'보다는 '고목나무'로 쓸 때 의미가 쉽게 와 닿기 때문이고, '담'보다는 '담장'이 운율이 있고 의미 전달이 명확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족발의 경우에는 단순히 '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이야기하는 것이므로 지칭하는 대상이 다르다. 그는 "현재 동어반복으로 지적받는 말 중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들이 많다"며 "오히려 동어반복을 통해 더 세밀한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말도 많기 때문에 무작정 바로잡자고 할 일은 아니다"고 말한다.
◆재미있는 소재는 많고 많다
이 책 '자장면이 아니고 짜장면이다'는 바르고 고운 우리말에 관한 이야기다. 이런 류의 책은 자칫 딱딱하고 지루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민 교사의 글은 재미있고, 다채롭다. 종일 표준어 관련 책만 파고들었다면 이처럼 쉽고 재미있는 우리말 이야기 책을 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평소 출퇴근을 하면서 라디오에서 듣는 이야기, 학생들이 질문을 하는 것이나 가르치는 내용들, 인터넷에서 실시간 검색에 오르는 말들, 주변에서 궁금하다고 물어오는 것, 그리고 EBS 교재를 만들면서 문제의 아이디어로 생각하는 것들이 모두 글의 소재가 된다"고 말한다.
의미 있는 소재라고 생각되는 내용이 있으면 전공 지식에만 의존하지 않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실제 사용된 사례들을 검색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많이 듣기 때문에 딱딱하지 않고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책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표준어 규정에 관한 책이 아니라, 우리가 쓰고 있는 말을 통해 삶을 생각해보는 책이다.
◆창작의 고통? 쥐어짜려니 고통!
민 교사는 시로 낙동강문학상 신인상 대상을 수상했을 만큼 문학에 관심이 많다. 그는 '고전은 고리타분할 것'이라는 생각은 '선입견'이라고 잘라 말한다. 요즘 사람들이 하나 마나 한 이야기, 고리타분한 이야기는 글로 쓸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듯, 옛날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설시조나 판소리계 소설들에는 재기 발랄한 발상과 표현들이 많고, 양반 지식인들의 논설이나 소설 작품에는 시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들어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는 '창작의 고통'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창작의 고통이란 생각해 놓은 글감은 없는데 마감 시간이 다가올 때 생기는 것 아닐까요? 창작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문학이라는 것을 매우 거창하고 엄숙한 것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그는 "문학은 일상 속에 있는 것이다. 문학과 일상을 분리시켜서는 안 된다. 창작은 누구나, 자유롭게, 즐겁게 하는 것이다"고 말한다.
◆이래 봬도 어릴 때는 마냥 귀염둥이
그는 자신을 '촌놈'으로 규정했다. 지금도 구미시 도개면에 부모님이 살고 계신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대구로 전학을 와서 누나들, 형과 자취를 하면서 농촌과 도시의 어중간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이 '촌놈'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1972년생으로 사회에서는 'X세대'라고 부르는데, 성장 과정은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오영수의 '요람기'에 가깝다.(단편소설 '요람기'는 1950년 전후 시골 아이들 이야기다) 게다가 시골과 도시 양쪽에 발을 걸치고 성장한 덕분에 세상을 좀 더 넓게 보고, 객관적으로 보는 데도 도움이 됐다고 한다.
학교 선생님은 늘 엄숙할 것 같지만, 그는 집안의 막내였고, 어린 시절 책임감이라고는 없었고, 제멋대로 굴어도 식구들에게는 마냥 귀염둥이였다. 지금도 심각한 것보다는 즐겁고 유쾌한 것을 좋아하고, 권위를 따르기보다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국어 성적 쑥쑥 올리는 비법
민 교사는 사회인야구로 운동을 즐긴다. 그는 국어 성적 올리는 방법을 훌륭한 야구심판에 비유해 설명했다.
"규칙을 잘 안다고 훌륭한 심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경기에서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펼쳐지기도 하는데, 경험이 많으면 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겠지요. 무엇보다 좋은 야구심판이 되기 위해서는 빨리 판단해야 합니다. 느린 화면을 꼼꼼히 볼 수 있다면 규칙을 아는 누구나 좋은 심판이 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국어 점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충분한 시간을 주면 거의 모든 학생이 만점 가까운 점수를 받습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실전을 거친 야구심판들이 투수가 던진 공의 출발 궤적만 보고도 스트라이크 여부를 예측할 수 있듯이 국어 실력을 높이자면 많은 문제를 풀어보고, 많은 책을 읽어야 합니다."
◆지은이 민송기는
1972년 경북 선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했고, 현재 대구 능인고 국어교사다. 국가수준성취도 평가 출제위원, 삼국유사 골든벨 본선문제 출제, 대경연구원 온고지신 프로젝트 '창조의 멘토 33인'. EBS 수능특강, 수능완성(수능연계교재) 비문학팀장. 부산교육청 전국연합학력평가 출제팀장. 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연재 중. 제2회 낙동강문학상 신인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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