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사심(私心)을 버리면 진실(眞實)이 보인다

12월 25일.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연말의 들뜸과 함께 모두가 좋아하는 예수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다. 필자에게는 잊지 못할 하나의 성탄 추억이 있다. 1991년 보통의 젊은이들처럼 사병으로 입대했다. 처음 배치받아 간 곳은 휴전선 너머 군사분계선. 흔히 말하는 비무장 지대의 수색과 경계를 하는 곳이었다. 군대 생활이야 누구에게나 고달픈 일이지만 필자에게는 최악의 배정지라고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신부가 되고자 하는 신학대학 학생으로서 성당에 전혀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6개월의 근무를 마치고 처음으로 휴가 나올 즈음 성당의 군종신부에게서 연락이 왔다. 휴가 후 부대로 복귀하지 말고 성당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고 군종신부에게 인사도 드릴 차 후방으로 나오는 도중에 성당에 들렀다. 훈련소 때 한 번 본 적이 있던 분이었다. 그런데 그분은 첫 휴가 차 들렀다는 나에게 뜻밖의 말을 했다. 대뜸, "잘 됐다. 휴가 가지 말고 인수인계 받아라"하는 것이었다. 이 무슨 날벼락 같은 이야기인가! 자초지종을 들으니 성당에 있던 군종병이 일주일 뒤에 제대하는데 그 후임으로 인사 조치를 해놓았다는 것이다. 전방 근무를 마치고 나가는 첫 휴가인데 너무한 조치였지만, 한편에서는 앞으로 성당에 있을 수 있다는 기쁨이 있었기 때문에 받아들였다. 하지만 성당에서의 군 생활은 남들이 부러워하던, 또 내가 기대했던 그런 꽃 보직(?)은 아니었다. 매일 해야 하는 사제관과 성당 청소, 세차, 행정 업무, 종교 업무, 부실한 건물 관리, 게다가 군종신부 식사 세끼마저 담당해야 했다.

어쨌든 하나하나 적응해 나가면서 그해 성탄을 맞이했다. 각 부대에 공문을 보내면서 12월 24일 오후 10시에 성탄 미사에 올 수 있도록 특별허가를 요청했다. 나는 성당이 그리웠던 부대에서의 옛 생각을 하면서 신자 사병들에게 멋진 성탄 선물을 해주고자, 넓은 마당 나무에 형형색색의 전등을 달고 성당 내부도 탄성이 나올 정도로 장식을 했다.

그런데 해거름부터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더니 잠시 만에 강원도 감자(?) 같은 함박눈으로 변해갔다. 눈발에 덮여가는 나무에 전등을 밝혀 보니 동화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지만 그 기쁨은 얼마 가지 않았다. 오후 8시가 넘어가자 사무실 전화가 계속 울렸다. 제설 작업 때문에 성탄 미사에 사병들을 보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이 깜깜해졌다. 쌓인 눈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전등이 깨어지면서 누전이 된 것이다. 부랴부랴 겨우 성당 안의 전원을 복구하고 각 부대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조금 늦어도 좋으니 신자 사병들이 성탄 미사에 올 수 있도록 부탁을 했다. 고맙게도 강한 눈발은 조금씩 잦아들면서 제설은 빠른 시간 안에 끝났고, 미사는 한 시간쯤 늦어진 오후 11시에 조용히 봉헌되었다. 열흘가량이나 준비한 나의 성탄 계획은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날은 나에게 가장 강렬하고 충격적인 성탄으로 남았다.

성탄은 화려한 불빛도 그림 같은 눈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수는 냄새 나는 마굿간에서, 가난한 젊은 부부의 아기로 드러나지 않게 태어났을 뿐이다. 화려한 전등과 동화 같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나의 사심(私心)이었다. 그 안에 진정한 예수는 없었다. 나는 예수가 원한 성탄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성탄을 꾸민 것이었다. 그 사심이 무너지자 성탄의 진실이 다가왔다. 예수의 인간 탄생 의미, 세상의 죄에 대한 용서, 인간과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 절망에 빠진 이들에 대한 희망의 선포, 바로 그것이다.

혼란스러운 시대, 특히 권력자들에게 이 말을 하고 싶다. 사심을 버리면 진실(眞實)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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