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공황장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관찰해 보면 같은 '가' 발음을 하더라도 소리가 미세하게 다르다. 그 이유는 발음을 하는 데 동원되는 기관들, 목구멍이나 구강 구조 등이 사람마다 다르고, 공기를 내보내는 개인의 습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사람이 발음할 때도 발음 기관의 상태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세상에는 수많은 '가' 발음이 있고 그것들은 연속적으로 분포하지만, 어느 정도 더 강하게 발음하는 지점을 지나면 사람들은 '카' 소리로 인식하게 된다. 이것은 무지개 색깔이 실제로는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고 경계선이 불분명하지만, 사람들은 빨주노초파남보로 경계를 끊어서 색깔에 해당하는 말을 붙인 것과 같은 원리이다. 이렇게 연속적인 실제 소리를 끊어서 소리를 구분하고, 그 구분된 소리로 다른 의미를 표현하는 것을 '언어의 분절성'이라고 한다.

글은 분절된 소리에 문자를 부여한 것이기 때문에 발음이 부정확해서 웅얼웅얼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도 글로는 정확하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대신 글로는 억양이나 속도를 표현할 수 없고, 표정이나 손짓, 발짓을 동원할 수 없기 때문에 정확하게 쓰지 않으면 의미를 알기 어렵게 된다. 말로 할 때는 '바담 풍'이라고 발음해도 대충 '바람 풍'으로 말한 것으로 알아듣는다. 그러나 글로 '바담 풍'이라고 해 놓으면 바람이 아닌 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이것이 글을 쓸 때 정확한 맞춤법을 써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인터넷에 보면 틀린 맞춤법 레전드라는 글이 있는데, 거기에 보면 이런 구절도 있다. '어의가 업네. 님들이 비난하는것도 어면한 사생활치매거든요.'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엉망진창이어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가도 소리로 내서 읽어 보면 신기하게도 뜻을 다 알 수 있기도 하다. 이것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앞의 틀린 맞춤법은 '어이가 없다' '엄연' '침해'와 같은 말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소리 나는 대로 비슷하게 흉내는 낼 수 있어도 제대로 쓰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주 최순실 청문회에 최순실 씨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그 사유로 '공항장애'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것은 어디서 들은 것을 가져왔지만, 갑자기 생기는 두려움을 뜻하는 '공황'이라는 말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열'(하혈)이 있다는 조카, '해도해도 않되는(안 되는) 망할새끼들에게 왠만하면(웬만하면) 비추함'이라는 레전드급 리포트를 쓴 딸을 보면 맞춤법을 모르는 것이 집안 내력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모습을 보면서 진짜 '공황장애'에 걸릴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에 의해 조종된 대통령을 지도자로 떠받든 우리 국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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