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연말연시, 되돌아 본 시간관념

송년회나 동창회 등의 총무나 회장의 가장 큰 애로 중 하나가 모임을 제시간에 할 수 있느냐이다. 예전에 우리 사회에서는 코리안 타임이라고 해서 10분 정도 늦는 것에 대하여 관대하였다. 우리 시대 권위적인 아버지들의 시간개념은 더욱 명확하지 않은 편이었다. 퇴근하시면서 '집에 다 와 간다'고 전화를 하면 기본이 30분 이상 늦게 도착하고, '빨리 간다'는 애매모호한 대답에 가족들은 밥상머리에서 한 시간 정도 기다리기 일쑤였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의 개념은 시계의 발달과 관련이 있다는 학자들의 발표도 있다. 산업화가 일찍 시작된 서구에서는 시간의 개념이 정확한 편이었고 그렇지 못한 나라에서는 시간개념이 생활화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농경 위주의 1차 산업사회에서는 대부분 사람들의 생활이 비슷하여 굳이 구체적인 시간을 정하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였다. 구성원들의 사회적 이동도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일과 종료시간도 해가 지면 자연스럽게 끝나고 시계의 보급도 없었기 때문에 시간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형성되지 않았다.

사회가 산업화, 도시화, 합리화되면서 시간에 대한 개념이 점차 중요해지고 세분화되면서 시계의 보급도 빨라지게 되었다. 1970, 80년대 시계는 중요한 선물 목록 중의 하나였다. 사회의 발전이 고도화, 복잡화되면서 구체적이고 정확한 시간의 개념이 더욱 요구되고 있어서 시계에 알람 기능이 추가되고, 수첩에 약속 시간을 메모하거나 달력에 표시를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 산업화가 이루어진 탓에 시간에 대한 이중적인 개념이 생겼다. 미국의 사회학자 오그번의 문화지체이론(Cultural Lag Theory)을 빌리자면, 문화를 기술을 포함한 물질문화(material culture)와 가치관, 신념, 규범, 제도 및 사회적 상호작용 양식 등을 포함하는 비물질적인 적응적 문화(adaptive culture)로 구분하고, 급격한 기술 변화와 양적 누적으로 인하여 비물질 문화의 변화와 적응은 항상 물질문화의 발달 속도를 따르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는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개인에게 손해가 가거나 불이익이 되는 것과, 아무런 피해가 가지 않는 것에 대한 태도나 가치관의 형성이 잘못된 경우가 많다. 정시에 출발하는 항공 시간, KTX, 고속버스 시간에 대해서는 철저히 일찍 도착한다.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나 자가용이나 택시를 이용할 때에는 대충 늦는 경우가 아직 남아 있다. 법원 재판 시간이나 지연이자가 붙는 공과금은 시간을 잘 지키지만, 동창회나 계모임 시간은 늦게 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회비도 제때 내지 않는 사람이 아직도 적지 않다.

후진국인 필리핀에서는 약속시간이 30분 정도 늦는 것에 대하여 '적당히 늦었다'(moderately late)는 것으로 인정되어 아직도 관대한 편이다. 선진국인 일본의 영업사원들은 '마이너스 5분 룰'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도 코리안 타임이라는 말이 사라졌지만, 시간관념에 대한 개인의 일상은 아직도 이중적인 면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사람을 대할 때마다 매번 느끼는 게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참 중요하다는 것이다. 신뢰와 믿음의 문제라서 그런지 사소한 약속도 잘 지키는 사람은 시간관념도 철저하고 자기가 뱉은 말에 대해서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연말연시를 맞아 많은 모임이 이뤄지고 있다. 철저한 시간관념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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