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리와 울림] 연탄 온돌의 추억

영국 케임브리지대(영문학 학사)
영국 케임브리지대(영문학 학사)'연세대(한국학 석사)'영국 옥스퍼드대(한국사 박사) 졸업, 전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 초빙교수

신혼 시절 연탄 난방 아파트서 살아

장남 태어나 가스보일러 집에 이사

몇 천 년 전에 보편화된 온돌 시스템

영국선 아주 현대적 가정에만 갖춰

1987년 서울에 도착한 이후 여러 달 동안 친척, 친구 집에 얹혀살다가 마침내 아내와 나는 과천에 있는 5층짜리 13평 주공 아파트로 이사 갈 수 있는 전세금을 모으게 되었다. 과천은 그때까지 서울 근교의 시골에 불과했다. 저녁마다 논에서 들리던 개구리 소리가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영국에서는 그렇게 시끄러운 개구리는 흔하지 않아서 처음에는 오리가 꽥꽥거리는 줄 알았다. 아파트는 방 두 개에 거실 겸 부엌과 작은 목욕탕이 있었다. 바닥에 온돌이 깔려 있는 연탄 난방이었다. 연탄아궁이는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밖으로 나가 현관 바로 앞에 있었고 다른 하나는 부엌에 있었다. 우리는 부엌에 있는 아궁이는 사용하지 않았다. 안전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연탄가스로 인한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가 자주 보도되었다. 아궁이를 하나만 사용한다는 것은 방 하나만 난방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지만 우리는 젊었고 이 한국 땅에서 우리 집을 갖고 크나큰 모험을 시작했다는 사실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온수도 없어서 가스레인지에 커다란 물통을 올려놓고 물을 데워서 욕실로 날라야 했다. 그러면 펄펄 끓던 물은 씻기 알맞을 정도로 식게 된다. 그러면서 욕실도 어느 정도 데워지니, 그 방법은 우리의 원시적인 세면 시설을 보완해 주는 아주 좋은 해결책이었다.

앞서서도 말했듯이 과천은 그 당시만 해도 시골이었다. 우리가 매일 물을 뜨러 가던 약수터도 가까이 있었고 청계산과 관악산도 있었다. 나는 일요일 아침이면 연주암에서 서울의 하늘로 태양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기 위해 관악산을 올랐다. 사실, 한국 사람들이 받은 가장 큰 축복은 하이킹을 할 수 있고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으며 운동도 할 수도 있는 산이, 사람들이 어디에 살건 지척에 있다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우리 신혼집'이라고 부르는 한국에서의 첫 번째 아파트에서 좋은 추억들을 많이 만들었다.

그 당시의 가장 아름다운 추억 중 하나는 퇴근을 하고 돌아오면 내 아내의 코에 뭔가 시커먼 것이 묻어 있는 것을 자주 보곤 했던 일이다.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이 보다가 하루는 "여보, 내가 퇴근해 들어올 때마다 봤는데, 왜 코에 시커먼 것이 묻어 있어요?"하고 물어봤다. 아내는 갑자기 막 웃더니 코에 묻은 것을 문질러 닦으면서 말했다. 내가 퇴근할 때 주차장에 차가 들어오는 것을 더 잘 보려고 매일 저녁 부엌 창문의 더러운 방충망에 코를 들이밀면서 내려다보느라 먼지가 묻어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아내가 매일 저녁 내가 퇴근해서 돌아오기를 이렇게 기다렸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새삼 내가 얼마나 복이 많은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다.

과천에 사는 동안 우리의 첫 아이가 태어났다. 부부만의 오붓한 생활이 끝나고 '가족'을 이루게 된 것이다. 우리 장남은 1월에 태어났는데 1988년 가장 추운 몇 달을 방 하나에서 캠핑하듯 지냈다. 아이가 생기고 보니 온수도 안 나오는 우리의 '신혼집'은 더 이상 살 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아파트 단지 내 방 두 개에 온수가 나오고 가스보일러가 딸린 호화로운 15평형 집에 눈독을 들이게 되었다. 이런 가스보일러는 당시 영국의 난방 시스템보다 앞서는 것이었다. 당시 영국에서는 대부분이 비효율적인 석탄이나 가스, 전기 히터로 난방하고 있었다. 그리고 온수는 전기급탕 방식이었다. 전기급탕 방식의 문제는 만약 가족 중 하나가 목욕을 하거나 하면 온수가 바닥나서 다른 사람이 목욕을 하려면 온수가 충분해질 때까지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21세기인 현재 영국 대부분 가정이 가스를 사용하는 중앙 집중식 보일러와 온수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아주 앞서가거나 아주 현대적인 몇몇 가정만이 바닥을 따뜻하게 하는 온돌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한국에서는 몇 천 년 전에 보편화된 시스템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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