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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의 근대문학] 현진건 '무영탑'과 난징대학살

현진건
현진건

우리나라 TV 시청자의 '역사드라마' 사랑은 유별나다. TV 드라마 역대 시청률 10위권 안에 '대장금'을 비롯해서 '허준' '태조왕건' 등 역사드라마가 3개나 포함되어 있을 정도이다. 비록 10위권에는 들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역사드라마가 시청률에서 낭패를 본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역사드라마에 대한 우리 대중의 깊은 사랑에도 불구하고 역사드라마의 역사왜곡 논란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일제강점기에도 역사소설이 대중의 열정적 사랑을 받던 때가 있었다. 1930년대 중반 즉, 일제강점기 말기에 조선 작가들은 소설 소재를 찾아 과거 역사로 달려갔다. 중일전쟁 발발과 더불어 일제의 사상통제가 강력해진 탓에 현실을 다루기 곤란해졌던 것이다. 현진건의 '무영탑'(1938)은 일제강점기 말 역사소설 붐 속에서 등장한 소설이다. 석가탑의 완성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그림자 연못에 몸을 던져 자살한 아사녀의 슬픈 운명을 다룬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신라 경덕왕 시대, 불국사 석가탑을 세우기 위해 서라벌로 뽑혀온 백제 장인 아사달과 아내 아사녀, 그리고 아사달을 사랑하는 신라 귀족 주만, 주만을 사랑하는 귀족 청년 경신 등 네 젊은이의 비극적 사랑이 소설의 기본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무영탑'은 단순한 연애담으로 끝나지 않는다. 네 젊은이의 애절한 사랑을 배경으로 신라 말기 귀족사회의 분열과 혼란이 세밀하게 묘사된다. 이 분열을 통해 작가 현진건은 화랑의 국선도 사상 부활을 주장하는 한편 사대주의를 비판하고 중국을 정벌하여 고구려의 옛 땅, 만주벌판을 되찾자는 민족부흥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한다.

동아일보 사회부장 시절, 일장기 말살사건에 연루되어 투옥까지 경험했던 현진건이었다. 현실에 대해 침묵을 강요당하던 일제강점기 말기, 과거 역사로 우회해서라도 현진건은 자신의 강건한 집념을 여전히 견지하려 하였다. 그러나 현진건의 순수한 의도가 조선 대중들에게 관철되기에는 '무영탑'이 발표된 1938년은 너무나 정치적이고, 폭력적이었다. 1938년은 일제와 중국 간의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고, 식민지 조선 역시 일제가 일으킨 중일전쟁의 거대한 정치적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

'무영탑'이 연재되기 약 반년 전, 일제는 중국 수도 난징을 침공하여 30여만 명의 양민을 학살하는 소위 난징대학살을 자행하였다. 난징대학살은 대륙 진출을 위해 중일전쟁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쉽게 승기를 잡지 못한 일제의 초조함에서 비롯된 비극적 사건이었다. 일제가 난징대학살을 자행했던 바로 이 시기, 현진건은 '무영탑'을 통해 민족재건을 꿈꾸는 신라의 적으로 당나라, 곧 중국을 설정하고, 당나라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있었던 것이다. 난징대학살의 비극적 실태와 관련한 모든 언로가 차단되어 있던 조선 대중이 '무영탑'을 읽으면서, 일본과 중국 중, 누구를 적으로 설정했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역사드라마가 방영되면 어김없이 등장한 역사왜곡 논란에 대해서 '흥미 추구'라는 방송의 태생적 한계를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1980년 뒤인 지금도 역사왜곡이 여전히 논란이 되는 것을 보면 그 자체가 한국 사회현실을 파악하는 또 다른 지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말기 조선문학에 나타난 문학, 역사, 정치 간의 은밀한 결속력을 돌아볼 때, 역사라는 것이 결코 권력의 자기증식을 위한 자원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지 우리에게 있어 역사는 비로소 미래를 향하는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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