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상식이 되어 버린 '긴축' 과연 정의로운 선택일까…『긴축, 그 위험한 생각의 역사』

긴축, 그 위험한 생각의 역사/ 마크 블라이스 지음/ 이유영 옮김/ 부키 펴냄

미국과 유럽 경제 정책의 최고 화두인 '긴축'(Austerity)의 역사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정리한 책이다. 저자 마크 블라이스 미국 브라운대 국제정치경제 교수는 대표적인 예로 유럽 재정 위기 이후 쏟아진 긴축정책을 든다. 유럽 재정 위기는 잘못된 은행 시스템과 유로화라는 통화제도의 영향이 겹쳐져 발생한 은행 위기가 본질이다. 그런데 유럽 여러 국가들은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엉뚱하게도' 긴축 정책을 연속적으로 펼쳤다. 각종 공공 지출의 대규모 삭감을 요구하며 은행의 책임을 시민들에게 전가했다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자. 2010년이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그리스,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일명 피그스(PIIGS, 다섯 국가의 이름 앞글자를 하나씩 따 모은 것) 국가들의 국채 수익률이 치솟으면서 국가부채 위기가 발발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0년 5월 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IMF)이 개입한다. 이들은 피그스 국가들에게 구제금융과 차관을 제공하며 공무원 임금 및 연금을 비롯한 공공 지출을 대규모로 감축하는 긴축 정책을 실행할 것을 요구했다. 이즈음 미국의회에서도 재정 적자에 대한 공격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또 2012년에는 루마니아, 에스토니아, 불가리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레블동맹이라 불리는 국가들에서도 긴축 정책이 시행됐다.

유행을 넘어 긴축은 상식이 됐다. 국가부채와 재정정책 이야기가 나오면 어느 국가든 거의 무조건 긴축 정책을 거론하고 또 실행하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저자는 긴축 정책이 긍정적인 결과를 내기는커녕 대단히 위험천만한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긴축이라는 팬데미아(세계적 유행병)에 대한 경고다.

이 책은 2013년에 처음 발간됐는데,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무조건적이고 원리주의적인 긴축정책은 저소득층의 삶을 파괴하고 사회 전반에 불안정성을 가중시켜 정치와 제도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을 증폭시키기에, 궁극적으로 정권이 전면적으로 교체되거나 파멸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책 발간 직후인 2014~2016년 유럽은 이 예측대로 흘러가고 있다. 긴축 정책을 받아들인 국가들은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 높은 실업률도 함께 겪고 있다. 결국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돼 사회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이는 정치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프랑스의 국민전선, 이탈리아의 오성운동,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등 사회의 불만을 먹고 암처럼 커지는, 결코 건강하다고 볼 수 없는 극우 및 포퓰리즘 정치가 득세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봐도 긴축은 1920, 30년대에 미국과 유럽을 수렁에 빠뜨린 적이 있고 파시즘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나면, 대한민국도 국가부채와 재정정책 문제를 논의할 수밖에 없다. 그 기점은 미국의 금리 인상이다. 한국은 그 여파를 직접 맞게 되는 국가다. 결국 국가부채의 증가를 최대한 저지하면서 이런저런 경제 문제를 풀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공공지출을 줄이는 긴축정책이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이때 사례 참고가 필요하다. 앞서 문제를 겪은 유럽이다. 사실 유럽에서 재정 위기가 터진 나라들은 한국과 유사한 문제들을 갖고 있었다. 포르투갈과 이탈리아는 기존 산업이 경쟁력을 잃으며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 아일랜드와 스페인은 주택담보대출 등 금융 상품으로 떠받쳐진 부동산과 금융시장이 사고를 쳤다. 이런 문제들을 배경으로 재정 위기가 터진 것이다. 우리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국가부채 비율이 더 높아지고 높은 실업률과 정치적 불안정을 겪을 수 있다. 그런데 긴축 정책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불 보듯 뻔해진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 할까? 일단 하나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문제의 근원이 은행 위기라는 점이다. 저자는 투자은행이라는 모델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투자은행들을 구제하기 위해 엄청난 재정을 투입하는 대가로 각종 공공지출을 줄이는 것이 경제 전체를 망친다면, 그 비용을 고려해 당장의 고통은 감수하더라도 은행이 파산하도록 두거나 투자은행 모델 자체에 상당한 제약을 가하는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명징하게 대비되는 사례로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를 든다. 아일랜드는 은행을 구제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부실 채권 처리에 사용하고 있는 반면, 아이슬란드는 부실한 은행을 과감히 청산하는 대신 건전한 실업률과 경제성장률을 얻어나가고 있다.

또한 국가부채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기본적으로 국가부채는 경제성장으로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당장 가시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내기는 힘든 일이기에, 우선 증세가 필요하다. 국가부채를 줄이면서 불황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다. 저자는 금융 억압과 최고 소득 계층을 겨냥한 세금(우리의 경우 종부세, 증여세, 법인세 등)을 제시한다. 여기서 금융 억압은 채권자에게 세금을 물리는 방법이다. 상당한 세수 증가를 일으켜 긴축정책 없이 국가부채를 줄일 수 있다.

저자는 단순히 국가부채를 줄이는 기능적인 면만 강조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길이 공정한 길이며 사회적 갈등의 심화를 막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위기를 발생시켜 온 은행 시스템이라는 우산 내지는 방패 아래에서 자산을 늘린 사람들과 구제금융 덕택에 위기에 대한 책임을 피해간 이들에게, 은행 위기와 국가 재정 위기의 고통을 분담시키는, 어쩌면 '정의로운' 일일 수 있다는 얘기다. 저자가 이 책에서 보여주듯이 경제와 정치는 따로 있지 않다. 주권을 나눠 가진 시민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경제 정책은 근본적으로 길게 갈 수 없고 오히려 악영향만 끼친다. 긴축은, 그래서 옳지 않다. 544쪽, 2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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