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백혈병 투병 중인 이승재 씨

돈 없어 항암치료 포기…남은 생은 6개월뿐

사진 김영진 기자
사진 김영진 기자

병상에 구부정하게 앉은 이승재(가명'43) 씨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병이 난 건 몸을 혹사하면서 일 욕심만 냈기 때문이겠죠. 나이는 자꾸 먹는데 아이가 자라는 걸 보니 조바심이 났거든요."

승재 씨의 가정이 수렁으로 빠져든 건 4년 전부터였다. 생선가게를 하던 승재 씨가 물건을 나르다 허리를 다쳐 입원한 뒤 네 살배기 아들이 발목을 다쳤다. 뒤이어 옷가게를 하던 아내마저 교통사고를 당했다. 승재 씨는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로 퇴원해 아내와 아들을 돌봤다. 승재 씨는 "그때부터 모든 것이 내리막길을 탔다"고 했다.

그래도 승재 씨 부부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승재 씨는 축산물 도매점에서 하루 17시간씩 뼈가 부서져라 일했고, 아내도 동네 마트에서 야간근무로 밤을 지새웠다. 하지만 불행의 그림자는 다시 승재 씨네를 덮쳤다. 지난 10월 승재 씨가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병상에 누웠고, 아내도 한 달 뒤 실직했다. 무일푼이 된 승재 씨는 2차 항암치료를 포기할 생각이다. 치료를 중단하면 그에게 남은 삶은 6개월이 고작이다.

◆치료 중단 위기…포기하면 남은 생은 6개월

부부는 결혼기념일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7년 전, 두 사람은 결혼보다 먼저 찾아온 아이를 품고 월세방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승재 씨는 생선가게를 했고, 승재 씨를 돕던 아내는 지인에게 돈을 빌려 옷가게를 시작했다. 하지만 장사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떼온 물건은 팔리지 않았고 빚은 자꾸 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승재 씨가 물건을 나르다가 허리를 다쳤고, 네 살 난 아들은 발목을, 아내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렇게 승재 씨 부부는 장사를 접었다. 자주 허리가 아팠던 승재 씨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1년 전에야 가까스로 축산물 도매점에 취직했다. 아내도 동네 마트의 야간 근무자로 자리를 잡았다.

오후 11시에 출근하는 아내는 매일 직장에 아들을 데리고 갔다. 오전 7시에 출근해 자정에 퇴근하던 승재 씨는 퇴근길에 계산대에서 곯아떨어진 아들을 업고 집으로 갔다. 힘에 부쳐도 엄살 부릴 여유가 없었다. 사업 실패로 떠안은 빚 8천만원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뼈가 부서져라 일하며 절반의 빚을 갚았다.

하지만 불운은 두 사람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지난 10월 승재 씨가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병상에 누웠고, 아내는 한 달 뒤 일하던 동네 마트가 야간 영업을 중단하면서 직장을 잃었다. "가진 것 없는 사람은 무리해서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어요. 그래도 그땐 힘들었어도 희망이 있었어요. 적어도 지금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지는 않았으니까. 앞으로 딱 4년만 더 이 악물고 버티면 될 줄 알았는데…. 뜻대로 되는 게 없네요."

◆병원비 가늠 안 돼 "치료 포기해야…"

승재 씨가 아프기 시작한 것은 지난 추석을 지내고 나서였다. 춥고 열이 났고 숨이 찼다. 명절 대목에 무리해서 몸살에 걸린 거라고 생각했다. 병원을 3곳이나 찾았지만 낫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찾은 대학병원에서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지난달 입원해 1차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승재 씨에게 한 차례 위기가 왔다. 골수검사 중 심한 출혈로 쇼크가 온 것이다. 검사가 끝난 후 휠체어에 몸을 싣던 승재 씨는 갑자기 경련을 일으켰다. 아내는 놀라 간호사를 불렀고 일곱 살 난 아들은 엄마의 옷깃을 붙잡고 벌벌 떨었다. 그때, 아내와 아들은 승재 씨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1차 항암치료를 받았다. 치료는 2차 항암치료 후 조혈모세포 이식수술까지 받아야 끝난다.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으려면 조혈모세포은행에 골수취득비 690만원을 미리 내야 한다. 그 밖에도 항암치료나 수술비 등 병원비가 얼마나 더 들지 가늠할 수 없다. 승재 씨는 2차 항암치료를 포기할 생각이다. 치료를 포기하면 시한부 인생이 된다. "1차 항암치료를 받는 데만 650만원이 들었어요. 더는 돈을 마련할 길이 없어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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