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경주의 시와함께] 풍장 27

황동규(1938~ )

내 세상 뜰 때

우선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입을 가지고 가리.

어둑해진 눈도 소중히 거풀 덮어 지니고 가리.

허나 가을의 어깨를 부축하고

때늦게 오는 저 밤비 소리에

기울이고 있는 귀는 두고 가리.

소리만 듣고 비 맞는 가을 나무의 이름을 알아맞히는

귀 그냥 두고 가리.

세상을 떠나가려는지 그 사람의 몸은 나비의 입속에 북풍이 쌓이듯이 한기가 생겨나고 그 사람의 몸은 새벽 산에 꽂혀 있는 삽 위의 흰 빛처럼 떤다. 그 사람의 몸은 검은 기차가 지나간 자리를 상상하다가 선로 위로 올라와 가만히 귀를 대어보는 물개처럼 조심스럽고, 그 사람의 몸은 먼 곳을 떠나온, 여행자의 가방 안에 들어 있는 이슬처럼 구른다. 그들은 서럽게 이 세상에 몸을 풀었다. 풍장은 바람의 몸을 빌리는 일이듯이, 마지막엔 바람이 되어 먼 곳에서 오고 있는 기차의 선로에 귀를 대어보듯이 바닥의 숨소리를 가만히 듣는다. 그들이 듣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