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호칭어(呼稱語)를 바로 쓰자

요사이 텔레비전만 틀면 최순실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최순실의 형 최순득의 딸이 장시호인 모양인데, 방송국에서 장시호를 사뭇 '최순실의 조카'라고 하고 있다.

최순실 형의 딸이면 최순실의 이질녀(姨姪女)이다. 1)형의 아들이나 동생의 아들. 2)오빠나 남동생의 아들이 '조카'이다. 3)형이나 동생의 딸 또는 오빠나 남동생의 딸은 질녀(姪女)이다. 경북에서는 지식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도 조카와 질녀를 반드시 구별해서 말한다.

장시호는 최순실의 이질녀라고 해야 바른 호칭어라고 할 수 있다. 아들처럼 이질(姨姪)이라고 하면 안 되지만, 이질녀와 같은 말로 보아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질녀를 조카라고 하면, 인정할 수 없는 잘못된 호칭어이다.

방송처럼 이질녀를 조카라고 하면. 조카의 범위가 넓어진다. 1)조카는 오빠나 남동생의 아들 또는 형이나 동생의 아들이 조카이다. 2)자매(姉妹'누이와 여동생)의 아들인 생질(甥姪)도 조카이다. 3)여형제(女兄弟)의 아들인 이질도 조카이다. 1, 2, 3은 모두 아들인 경우고, 딸일 때는 '녀'(女) 자를 뒤에 덧붙여야 한다. 1)조카-질녀. 2)생질-생질녀. 3)이질-이질녀. 이처럼 정확하게 말하면 여섯 사람의 조카가 있게 된다. 그런데 이 여섯 사람을 묶어서 통틀어서 '조카'라고 하면 호칭어를 모르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인은 호칭어를 세분할 줄 모르는 후진 국민이 아니다. 선인(先人)들은 호칭어를 정확하게 썼는데, 현대에 와서 돈만 중시하니, 예문(禮文)은 퇴보한 것 같다. 방송국에서 말하는 사람들은 앵커맨, 정치평론가, 시사평론가, 변호사, 국회의원, 저명인사 등 지성인들이다. 그런데도 이질녀(姨姪女)로 바로잡아서 말하는 사람도 없고, 둘러앉아서 계속 '최순실의 조카'라고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방송은 파급효과가 막강하므로 국민을 오도(誤導)할 수도 있고, 계도(啓導)할 수도 있다. 지도층 인사들이 방송국에 둘러앉아서 국민의 언어를 오도하고 있는 걸 보니 안타깝다. 그 사람들은 '정치와 돈'만 가치 있고, 호칭어 같은 것은 관심 밖인 모양이다.

정부에서 편찬한 표준국어대사전에도 호칭어가 21개나 잘못되어 있다. 국어사전의 오류 호칭어를 수정하려고 국립국어원장을 4번이나 찾아갔지만 헛수고였다. 방송인들도 "이질녀면 어떻고, 조카면 어떠냐?"는 식으로 도통 오류를 바로잡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거 바로 알아서 돈이 생기나, 밥이 생기나?"며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식인이 '조카'와 '이질녀'를 분간하지 못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참으로 개탄스럽다.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 씨는 박 대통령을 언니라고 하지 않고 늘 "형님"이라고 불렀다. 바른 호칭어를 사용한 것이다. 박근혜와 박근령은 형제간(兄弟間)이지 자매간(姉妹間)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지만이 박근혜와 박근령을 가리켜 "저와 자매간(姉妹間)입니다"라고 하면 바른 호칭어가 된다. 딸들만 같이 있을 때 "당신들은 어떤 관계입니까?"라고 물으면 "형제간입니다"라고 하는 것이 바른말이다. 자매간(姉妹間)이 아니다.

올바른 호칭어를 사용하는 것이 어렵고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엄연히 바른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잘못된 말을 아무런 비판이나 반성 없이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것은 아름다운 우리말을 혼탁하게 한다. 바른말을 쓰도록 더욱 노력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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